나는 이래서 작가가 되었다
매체명 : 문화일보   게재일 : 2008-01-03   조회수 : 6905
[문화일보 2008.1.3] 나는 이래서 작가가 되었다
시인·소설가 9명의 고백 ‘내 인생의 글쓰기’ 출간

“싸아악, 하는 소리가 났다. 쥐벼룩이 떼로 몰려오나 싶었지만 쥐벼룩은 그런 소리를 낼 정도로 크지 않았다. 그 소리는 바로 내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감동으로 곤두서는 소리였다.”

시인 성석제는 초등학교 때 ‘흙손 엄마’라는 동시를 읽고 느꼈던 감동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문학이 가지고 있는 본질, 보편의 감동에 닿았던 것이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감정, 감각에 나는 당황했다”며 시인은 자신의 문학의 뿌리를 ‘감동’이라고 말한다.

작가들의 감수성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대다수 독자도 소싯적 책을 읽으며 만났던 감동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내 인생의 글쓰기’(나남)는 안정효 신달자 김원우 도종환 김용택 안도현 등 9명의 시인·소설가들이 자신들을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책과 글쓰기에 대해 고백한 글들을 모았다.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민병욱)가 그동안 ‘어머니·청소년 독서강연회’를 열면서 연사로 나왔던 작가들의 강연을 엮은 것이다.

작가들의 책읽기는 처음에는 아무 책이나 마구 읽는 ‘남독’에서 시작해 나름대로 정선된 책읽기로 발전하는 양상을 공통적으로 보인다. 그들의 어린 시절에 읽을 만한 책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요즘 학생들의 책읽기와 관련해서 시사하는 점도 적지 않다.

시인 김용택은 산골분교를 찾아오는 월부 책장수를 통해서였다. 맨 처음 ‘도스토예프스키전집’을 사본 후 “내 눈에 들어선 어제의 것들이 오늘 다 새로 보였으며”, 이어 ‘헤르만 헤세 전집’, 이어령, 박목월, 서정주 전집, ‘니체전집’‘한국문학전집’ 등을 월부로 사 보면서 어느날 “아! (교실의) 아이들이 하나하나로 보이는 경험”을 한다. 그는 “나는 시인이 되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것도 아니다.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내게 다가오고 일어나고 쓰러지는 온갖 생각들을 책을 통해 또 밀어내고 쓰러뜨리고 일으켰다”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을 들려준다.

번역가로 더 이름을 날린 소설가 안정효 역시 스스로 ‘책읽기의 폭주’라고 할만큼 대학시절 ‘다독’(多讀)을 했다. “방학 때 날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 틀어박혀”, 하루에 두어 권씩 50일 동안 ‘책이 눈에 띄기만 하면’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을 읽어댔다. 도서관의 번역 문학작품이 바닥이 나자 영어로 된 책에 눈을 돌렸고, 그것이 그를 번역가로, 영어 소설을 쓰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작가들의 책읽기는 어느 순간 자연스레 글쓰기와 연결된다. 그 글쓰기는 작가를 두번째로 새로 태어나게 한다.

시인 도종환은 “문학의 토양은 상처며, 상처가 스승이다”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료행위”로 정의한다.

시인 신달자는 삶을 포기할까 고민했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 “그때 세상을 향해 원망만 하거나 경멸하기만 했다면 나는 더 지치고 쓰러졌을지 모른다”며 “말하자면 (시 쓰기를 통해) 검은 고통의 내 삶을 예쁘게 껴안았던 것이다”라고 토로한다.

더 나아가 소설가 김원우는 “글쓰기는 오복 중 하나라는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과 견줄 만한 일상의 낙”이라고 상찬하고 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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