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소박하게]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이런 삶이 있습니다
매체명 : 전라도닷컴   게재일 : 2021.09월호   조회수 : 345

낡고 해진 자리가 외려 정갈히 빛났다. 떨어진 뒷꿈치에 먹색의 자투리천을 덧대 한땀한땀 꿰맨 검정고무신.

2012년 3월호 전라도닷컴 표지였고, 전라도닷컴이 몇해 전 열었던 촌스럽네라는 제목의 전시에도 내걸렸던 사진이다.

무설설(無說說). 말없는 말씀을 듣는 마음들 많았던 댓돌 위 그 고무신의 주인은 육잠(六岑) 스님.

창간 1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의 전라도닷컴 독자들을 만난 기획특집 '독자'면에 소개된 스님의 산방은 경상남도 거창 가북면 덕동마을에 있었다.

 

전충진씨가 옮겨낸 육잠 스님의 산중생활

〈그곳은 야단스럽거나 기름지거나 소란스런 것들과는 맞지 않는, 풀과 나무의 방향(芳香)으로 가득한, 속(俗)이 끝나는 그 어디쯤.>

스님의 맑고 간소한 산중생활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단순하게 소박하게》(나남출판).

'육잠'이란 이름은 책 표지에도 날개에도 없다. '문명을 거부한 어느 수행자의 일상'이란 부제에 언뜻 그 존재가 드러날 뿐, 이름을 앞에 내걸지 않은 데서도 스님의 성정이 느껴진다.

“굳이 산골 살림을 책으로 남길 필요가 있겠나?”

세상에 드러내기를 마다하는 스님을 대신해 오랜 지음(知音)인 전충진씨가 “청빈을 밑천으로 삼은 스님의 산거(居)를 오롯이 옮겨냈다. 한 줄기 맑은 바람을 세상에 실어내는 심정으로.

그이는 스무 해 넘게 대구 지역일간지 기자로 일했으며 최초의 '독도 상주기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독도 전문가이기도 하다.

언젠가 스님에게 글씨를 받았다 한다. ‘骨淸(골청)'. 평생 바위굴에서 홀로 살았던 일본 에도시대 선승 자쿠시츠가 쓴 시 중 한 구절. 청빈하게 살다가 죽으면 바위 밑에 묻히더라도 뼈까지 맑아지리라는 뜻.

“이 얼마나 삼엄합니까.” 스님은 그리 말했다 한다. 청빈을 깊이 사모하며 평화롭게 꾸리는 듯한 산중 수행자의 내면에 깃든 치열함과 간절함이 짚어지는 말씀이다.

 

장작더미에 기대어 놓은 지게와 작대기 하나

오로지 자신의 몸을 부려 끌과 톱과 자귀와 대패 따위 손연장으로 지은 자그만 산방에서 농납(農)이자 '지게도인으로 살아온 스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을 깊이 새겨야 할 청규(淸規)로 받들어 농사와 노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스님. 수시로 짊어지는 나무지게며 농기구며 살림살이를 직접 만들어 쓰는 스님. 해우소 옆 헛간 벽에 걸린 지게를 두고 “이 똥지게는 내가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고 말하는 스님. 옷이며 이불이며 손수 바느질하고 수놓는 스님. “수행자는 일의일발(一依一)이면 족하다”는 말의 묵묵한 실천처럼 낡은 자리마다 누덕누덕 기운 승복을 입은 스님. 산골 할매의 낡은 약초 괭이를 얻어 청마루 벽에 모셔 걸어두고 그 고단한 인생역정을 새기는 스님.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밤새 쓴 손편지를 바랑에 챙겨 넣고 산길을 내려가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 부치는 스님. 10리 길 정도는 으레 걸어 다닐 줄로만 알고, 종이 한장함부로 버리는 법이 없고, 해우소에는 화장지를 두칸씩만 떼어 쓰세요'라고 적어두고 사는 스님. 순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살려 스스로 코딱지 환경파수꾼'이란 소임을 자청한 스님.

“세상은 우리의 필요에 의하면 풍요로운 곳이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라는 간디의 말처럼,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기껍게 살아온 산중생활이다.

"글쎄, 덕동마을이 아직 전기가 없지, 아마….”

버스에서 만난 촌로의 말에 이끌려 찾아든 수도산 자락 첩첩산중 마을, 1991년 조그마한 절의 주지 자리를 벗어 버리고 그곳에 바랑을 풀기까지 스님은 전기가 들지 않는 조용한 마을을 찾아 무던히도 헤매었다.

“전기를 안 쓰겠다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욕심일지는 몰라도 전기를 용인하는 것은 문명을 속절없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지요.”

문명의 편리와 물질의 풍요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가능한 한 자연의 일부로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장작더미에 기대어 놓은 지게와 작대기 하나/ 그리고 녹다만 눈 조금)

스님의 벗이었던 임길택(1952~1997) 시인이 쓴 스님 재산'이란 시다. 그마저도 녹다만 눈 조금처럼 종내는 사라질 것임을 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었네)이니.

“사람이 바로 시였던 임길택 시인을 기려 산방 개울가 옆에 세운 시비는 스님이 손수 나무로 만든 것.

‘떠나가는 곳 미처 물을 틈도 없이 지나가는 자리마저 지워버리고 가버린 새/금 그을 줄 모르고 사는 그새’(똥 누고 가는 새' 중) 같았던 고인의 생애와 뜻을 아름답게 받든 모양새이다.

그 시비 제막식 막바지에 사회자가 스님한테 인사말을 청했던가 보다.

다만 <쉰 목소리로 허공에 크게 고함 한번 질렀다〉고 책속에 쓰여 있다. 무욕한 두 벗이 서로에게 건넨 마음. 스님 재산이란 짧은 시와 외마디 목소리에서 듣는다.

 

“지게질 할 때는 묵묵히 발끝만 보고 그림자를 밟으며 걷지요. 고개를 치켜들고 '어디까지 왔다', '얼마나 남았다' 하고 조바심을 내면 힘이 들어 지게질을 못 해요.…그것이 <지게질의 숙명>쯤 되겠지요. 그러다 짐이 한쪽으로 기울면 기우는 대로, 지게작대기를 팔짱에다 끼워 받치고 그냥 묵묵히 걷는 거지요. 우리가 사는 것 역시 지게질과 마찬가지로 뭐 그리 대단한 곳에 다다를 데가 있겠어요. 설령 뜻한 곳에 다다른다고 해도 또 다른 짐을 지고 나서야 하겠지요. 그것이 곧 노동의 실체이기도 하고, 이승을 사는 생의 모습이기도 할 터이지요. (책 63~64쪽)“

 

‘생명불식(生命不息)‘과 '다비목(茶毘木)‘

낮에는 농사짓고 달 뜨는 밤이면 벼루에 먹을 갈아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스님은 “붓글 쓰는 사람은 다만 우직하게 쓰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둬야 한다”고 말한다.

사(思杜)'란 글씨도 그렇다. 두보를 생각하다'는 이 두 글자는 눈보라 몰아치는 어느 겨울밤, 처마밑 무시래기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를 듣고 '저 소리는 두보의 가난이 깊어가는 소리라는 생각에 문득 쓴 글. 가슴 한구석에 시인 두보의 가난과 눈물을 늘 담고 살기에 산방의 당호도 두곡산방(杜山房)'이다.

꾸밈없이 우직한 글씨와 천진한 그림들을 잠깐 세상에 내보인 적도 있다. 두 차례의 전시 제목은 똑같았다. 생명불식(生命不息)', 살아있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이 말은 스님이 늘 붙들고 사는 화두이기도 하다.

자신이 죽고 난 후 화장에 쓸 나무인 '다비목(茶毘木)'을 직접 준비하며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하루를 보내는 마음과 생명불식'이라는 생명자의 끊임없는 추구는 서로 다르지 않다.

숨탄 것들은 모두 제 안에 죽음을 품고 있는 법, 스님은 삶의 갈피에 끼인 죽음을 언제나 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돌배나무 아래 스님이 쟁인 다비목 역시 이 자각의 끈을 놓지 않고 매순간 결연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각성의 죽비인 것.

덕동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사람과 자연의 어우러짐이 사라지면서 스님은 2012년 이후 거처를 경북 영양으로 옮겼다. 3칸 산방에서 여전히 농사짓고 글씨 쓰고 오체투지하며 담박한 일상을 꾸리고 있다.

 

글 남신희 기자

단순하게 소박하게_앞표지.jpg

기사원문(하단 pdf 참고)

첨부파일 전라도닷컴_단순하게 소박하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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