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체제의 정치경제학 1,2] [‘인민의 부모’ 공산당이 사회주의를 무너뜨렸다]
매체명 : 한겨레   게재일 : 2019.09.27   조회수 : 774

현실 사회주의 연구 권위자 야노쉬 코르나이, 사회주의의 정치경제 실패 원인 분석
‘연성예산제약’ 등으로 근원적 모순 이론화…‘자본주의 대안체제’가 넘어야 할 고전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경제학 1, 2

 

야노쉬 코르나이 지음, 차문석·박순성 옮김/나남·1권 3만2000원, 2권 2만3000원

 

헝가리 출신 경제학자 야노쉬 코르나이(J?nos Kornai·91)는 손꼽히는 현실 사회주의 연구자로 그동안 국내 학자들에게도 시간적 지체 없이 바로 수용되어왔다. 소련과 북한 등 20세기 현실 사회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논문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간 이상하게도 그의 저서 번역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1928년 태어난 코르나이는 20세기의 격랑을 관통한 삶을 살아왔다. 유대인인 그는 헝가리를 침략한 나치에 의해 아버지와 형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잃었다. 이후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되지만, 헝가리 공산당 중앙기관지에서 경제부문 편집장으로 일하며 사회주의 경제의 현실을 목도하고 깊은 환멸을 느낀다. 그는 헝가리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소련형 체제를 비판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결국 반혁명분자로 몰려 연구소에서 추방당한다. 그는 이 논문을 토대로 1956년 <경제 관리의 과도집권화>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이 책은 ‘철의 장막’ 뒤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쓴 최초의 소련형 체제에 대한 공개적 비판으로 기록된다. 여러 서방 국가의 연이은 초청에도 1963년에야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았고, 1986년엔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에 임명돼 2002년까지 근무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경제학>은 그가 하버드대학에서 매년 진행한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을 총괄적으로 다루는 강의를 기반으로 5년간 집필한 책이다. 1991년 출간 당시는 마침 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던 때였다. 많은 전문가와 운동가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서술과 생각을 바꾸었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을 비판해온 코르나이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책은 당대의 고전적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붕괴 과정 등을 모두 다루는, 그의 32년 연구를 종합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된 코르나이의 저작이 됐다.

 

코르나이는 이 책을 권력구조 분석으로 시작한다. 권력구조야말로 “사회주의 체제를 이해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전적 사회주의 국가는 단일정당 체제이며, 당은 국가와 대중조직 등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당 관료기구는 그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이르고, 어떤 법적인 견제도 받지 않는 ‘법 위의 기구’로서 구조적으로 전체주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가 제안한 ‘연성예산제약’은 지금까지도 사회주의 체제만이 아니라 국영기업의 비효율성을 비판하는 주요 논리로 자주 호출되곤 하는 유명한 개념이다. 연성예산제약이란 기업의 지출이 제약된 예산을 초과했을 때, 정부 등 외부의 지원으로 이 예산이 유연하게 조정되는 상태를 말한다. 코르나이는 이를 부모와 자식 관계를 예로 설명한다. 학생처럼 용돈을 받아서 쓰건, 성장해서 스스로 돈을 벌면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만 부모에게 도움을 받건, 자녀들 뒤에는 온정적인 부모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적자를 내고 재정적으로 파국을 맞아도 정부의 도움으로 계속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 기업의 생존이 시장의 반응이 아니라 정부의 지원에 달려 있기에 기업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내적 쇄신이 아니라 대정부 로비다. 반면 경성예산제약, 즉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시장의 경쟁과 이윤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인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이나 사회주의 사회의 사적 부문은 효율적 운영과 기술 혁신으로 이윤 추구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자기 생각과 접근방법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네 사람으로 마르크스, 슘페터, 케인스, 하이에크를 꼽는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주장한 하이에크와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를 치켜세운 슘페터의 입장에 더 가까이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잘못 실행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제기한 사회주의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적 소유와 시장을 없애고 공유와 관료적 조정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프로그램이 실행됐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붕괴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사회주의 실험은 앞으로도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인류는 대단히 많은 제3의 길이라는 해결책들을 실험해 왔다. 거의 14억명의 인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회주의 체제의 개혁은 지금까지 시도된 가장 엄청난 제3의 길이다. (…) 이 거대한 실험은 지금까지는 실패했다. 여기에 덧붙여 말할 수 있다. 만일 이 책의 논리전개에 따른 예측이 올바른 것으로 증명된다면, 미래에도 그 실험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내적 모순이 드러나는 때부터 붕괴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목격한 코르나이는 당대 현실을 날카롭고 담대하게 꿰뚫어본 이론가였다. 하지만 역사가 종말을 맞았던 것처럼 보였던 소련의 해체로부터 3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듯, 자본주의 체제도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 없이는 존속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현재의 기후위기는 자본주의가 인류를 절망적 상황으로 내몬 주범임을 고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는 현실적 지평으로서 다시 시야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곱씹고, 넘어서야 할 현대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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