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稀 민병문 헤럴드 주필 책 펴내
매체명 : 기업&미디어   게재일 : 2008-10-23   조회수 : 6958
“꿈꾸는 논설위원이 많았으면 좋겠다. 천직으로 생각하고 권력과 돈과 명예를 최고로 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팔 수 있는 여건의 문명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집단의 메마른 생활이 우리를 야금야금 좀 먹는다. 생각이 엷은 사회의 바삭바삭 소리, 정이 사라진 인간무리를 보라, 정글이 따로 없지 않은가.”(책 본문 중)

고희의 나이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언론인, 민병문 헤럴드경제 주필이 녹록치 않았던 삶을 담은 회고록 ‘펜과 나침판’을 펴냈다.

1964년 동아일보 7기 수습기자로 입사해 경제부장과 논설위원 실장을 지내는 등 평생을 언론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저자는 43년 기자생활 가운데 24년을 칼럼과 사설을 쓰는 논설위원으로 보낸 최장수 ‘논객’으로 유명하다.

현장경험, 취재원과의 인간관계, 논설위원실 풍경 등 신문쟁이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는 ‘펜과 나침반’은 나이도 잊은채 여전히 날카로운 비평을 서슴치 않는 외길 ‘펜 인생’ 43년에 대한 증거이자 기록이다.

우선 ‘고희 주필의 논설위원실 이야기’라는 부제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듯 한 표지디자인부터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이어 장을 넘길 때마다 꽉 찬 단어들이 금새라도 튀어 나올 듯 하나같이 당당함을 내 뿜는다. 전체 430여쪽에 이르는 무게감과 전편에 넘쳐 흐르는 자유자재함은 필력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꿈꾸는 논설위원이 많았으면…”

‘논설위원실’이라는 독특한 배경도 재미있다. 그동안 기자들이 현장 이야기를 담아 쓴 책은 많았지만 논설위원실에 국한해 쓴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기자 사회에서 말의 끗발을 따진다면 논설위원, 주필에 당할 자가 없는 만큼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자리다. 하지만 막상 논설위원이란 타이틀을 달게 되면 십중팔구는 막막해 한다. 전달에 충실하면 그만인 기사와는 다른 사설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논설위원 입문 교과서라고도 할 만하다. 논설위원실 회의에서 그 날의 사설이 어떻게 결정되고 주필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신문사의 방향과 개인의 주관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 요령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좋은 칼럼, 사설을 쓰려면 취재원과의 관계를 다양화하라고 조언한다. 논설위원은 전문가가 아닌 만큼 논리를 보충해줄 취재원이 필수라는 얘기다. 또한 유능한 논객이 되려면 책상보다는 현장, 관계형성에 부지런을 떨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더불어 동아일보에서 시작한 기자생활의 애환과 자괴, 논설위원실 풍경 등과 함께 이름만 대도 알만한 원로급 언론인들과의 일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식인 노동자인 기자들의 조로현상과 이들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제언은 신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이다. 또 신문의 품위가 얼마나 똑똑한 논설위원을 많이 갖고 있느냐로 결정된다는 주장은 여론 반영과 형성이 언론의 핵심기능으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고 딱딱하지만도 않다. 1.4후퇴 실향민으로 수원에 정착한 어린 시절, 소설가 황순원 선생으로부터 작문 점수로 98점을 맞은 얘기, 서울고 시절 학원 문학상 수상, 연세춘추 기자 등 밑그림까지 더해 그의 ‘펜 인생’이 한 폭의 잘 그려진 그림으로 투영된다. 신영복 교수가 저자에게 준 글과 그림이 담긴 표지 또한 쉽지 않은 ‘보너스’다. <최원근 기자>

<저자 약력>서울대 상대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미국 미주리대 1년 연수,
동아일보 경제부장,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 무역위원회 무역위원, 현 헤럴드경제신문 주필, 시인(국제문예), 한국언론학회 칼럼상ㆍ삼성언론재단 칼럼상 수상, 주요 저서는《미국, 역시 먼 나라》(나남), 《재벌, 날개를 달아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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