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지훈국학상

수상자
이영미
수상작품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수상자의 말

1.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저에게 ‘지훈국학상’이라니 이런 황감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저는 자타가 인정하는 학계의 아웃사이더입니다. 학사부터 석사까지를 6년 동안 후다닥 해치우고는 이후에는 학적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나이 또래 연구자로서 저처럼 ‘가방끈이 짧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서도 본격문학이 아닌 ‘날라리’들이 노는 대중예술 분야를 연구 영역으로 선택하고, 그것도 노래, 영화, 방송극, 연극 등을 가로지르며 정신없이 날아다녔습니다. 현장 평론을 하면서 연구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유지할 교수직도 없으면서 논문이나 학술서도 줄곧 써 대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이상한 인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대형서점에서도 제 책은 어느 분야로 분류해야 할지 몰라 엉뚱한 곳에 꽂혀 있기 일쑤입니다.
이런 저에게 이 상을 주시다니요. 혹시 하늘에서 지훈 선생께서 혀를 차시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지훈 선생께서 기획하신 《한국현대문화사대계》 안에 파격적으로 ‘대중음악’ 분야가 포함되어 있었음을 기억해 냈습니다. 제가 석사 1학년 시절에 이 분야의 글을 처음 쓴 것이자 200매가 넘는 첫 글이었던 것이 〈일제시대의 대중가요〉(김창남 외, 《노래》 1집, 실천문학사, 1984)였는데, 그때에 대중가요에 대한 연구로 유일하게 믿고 참고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책에 실린 글이었습니다. 그러니 꾸지람을 내리시진 않겠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스물네 살 때부터 글을 써서 먹고살았습니다. 20대에는 전국의 마당극 판과 노래운동 현장을 녹음기를 들고 따라다녔고, 30대에는 일주일에 닷새는 대학로의 극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평생 제가 할 말을 얻게 됐지만, 돈도 시간도 없어 박사코스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대신, 마흔 될 때까지 책을 한 10권쯤 내면 되지, 뭐.’ 다행히 저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주어졌으니까요.


2.
대중성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석사 논문도 1920년대 대중화논쟁에 대해 썼고, 심지어 학부 수업시간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대중성 이야기는 간간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술문화운동에 몸담고 있을 때에도, 특정 작품이 하필 그 시기에 그 사람들에게 왜 인기가 있는지, 왜 그 수용자들은 그 작품을 그런 방식으로 수용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서른 즈음에 노동가요에 대한 논쟁에 휘말리면서, 저에게 대중성이 내내 중요한 화두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중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념’이 아니라 ‘취향’을, 작품의 ‘인식적 내용’만이 아니라 ‘예술적 관습과 정서ㆍ세계전유방식’ 등을 분석해야 하며, 시대ㆍ계급ㆍ학력ㆍ젠더ㆍ세대 등 다양한 요소에 따른 차이를 규명해야 함을 확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외국의 유명한 문화연구자들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술문화운동의 경험을 통해서였습니다.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에서도, 같은 해에 나온 대중예술 원론에 해당하는 대중서 《대중예술본색》 에서도 외국의 이론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 휘몰아친 리얼리즘론에 저도 적잖이 영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도 리얼리즘론이 오로지 인식만을 중시하는 예술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접한 수많은 예술 현상들을 도저히 그 틀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풍물이나 건축에 리얼리즘을 들이대는 일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이겠습니까. 1990년대에 몰아친 수많은 외국 문화이론의 바람에도 심드렁했습니다. 제가 이미 생생하게 경험한 것을 구태여 외국이론의 틀에 욱여넣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쓸 만큼 제가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이론적 추상화의 수준이 낮더라도 제 머릿속에 들어온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1990년대에 쓴 마당극이나 대중가요에 대한 단행본은 그런 산물이었지요.


3.
1998년에 여덟 번째 책인 《한국대중가요사》 를 내고 나니 권수를 세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가지 분야의 통사적 정리를 더 해보고 싶었습니다. 대중가요사에서 확인한 각 시대의 사회상황과 작품 경향의 조응이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확연히 나타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대중가요가 서정적인 예술이니, 서사적・극적인 대중예술 한 분야를 더 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중소설, 극영화, 만화 등은 제가 아닌 다른 분들이 하실 것 같아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방송극을 골랐습니다. 작품 하나하나의 길이가 너무 길고 자료가 제대로 보관되어 있지 않아 아무도 연구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제가 옛날 방송극을 많이 보고 자랐다는 것이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일이니 직장을 가지고서는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생활과 공연장을 따라다니는 연극평론 모두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2년 다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에 사표를 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구를 더 해보고 싶어 연구소를 그만둔 거지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방송극만 연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대중소설까지 두루 보아야만 그 시대의 감이 잡혔고, 한 분야의 인기 경향이 다른 분야로 옮아가는 것은 다반사였기 때문입니다. 방송극이 영화로, 대중소설이 방송극으로 리메이크되고, 방송극 작가가 대중소설로 베스트셀러를 써내고, 주제가가 대중가요로 인기를 모으는 현상은 아주 흔했습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경우에도 같은 시대의 작품들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한 수용자가 여러 분야의 대중예술을 향유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만, 이는 대중예술에서 수용자가 가장 중심적임을 인정하는 대대적인 시각 변화를 수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중예술 연구에서 분야를 가로지르는 일은 필수적이라 느껴졌습니다.


신파성에 대한 연구는 대중가요사를 쓰고 난 몇 년 후에 작은 논문으로 시동을 걸긴 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긴 글을 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방송극사 연구를 하다가 중간에 만들어 내는 작은 성과물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대중예술 통사를 본격적으로 쓸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다 보니 점점 커졌습니다. 엉성하게 듬성듬성 언급한다 해도 워낙 긴 기간의 여러 분야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자료의 양과 함께 힘들었던 대목은, 신파성의 부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문제에서 배타적 근대중심주의 시각을 극복하는 일이었습니다.


다 쓰고 나서 따져 보니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는 《한국대중가요사》 이후 18년 만에 낸 전작 학술서였습니다. 그 사이에도 전작 단행본을 여러 권 냈습니다만 대중서였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18년 후를 세어 보니 제 나이가 70대 중반이 되더군요. 욕심 같아서는 한 권쯤 더 내고 싶긴 한데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4.
과분한 상을 받고 나니 고마운 많은 분들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은사이신 김인환, 김흥규 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학부 시절부터 귀찮게 말 많고 때때로 말썽도 피우는 저를 잘 거두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학적을 가졌던 시간이 짧아 가방 한 번 제대로 들어 드린 일이 없는데 끝까지 제자로 여겨주시니 고마움의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신파성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던져 준 친구 강영희는, 이후 지금까지 어떤 때는 동료 평론가로, 어떤 때는 상담자로 인생의 힘든 고비를 함께해 주고 있습니다. 정말 고마울 따름입니다. 돈도 되지 않는 두꺼운 학술서를 두말 않고 출판해 주신 푸른역사 박혜숙 대표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지훈국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통고받은 이후에 남편(박인배)이 이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연극쟁이 남편이 도와주는 게 없다고 위악을 떨었지만, 대중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 준 훌륭한 선배이자, 평생 제가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 준 좋은 남편임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거동 불편한 몸으로나마 시상식 자리에 오고 싶어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네요. 그의 영전에 이 상을 바칩니다.

 

이영미

심사평

대한민국 ‘국민’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그 기원이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 국호(國號)와 정부(政府)는 그때 얻었을지 모르나 그 바탕을 이루는 민족과 민중은 도저한 시간 속에서 형성되고 갱신하며 자기발전의 길을 걸어왔을 터이다. 자기학대나 자기과장이라는 두 편향을 넘어 20세기 한국인의 정체성과 감수성의 형성과정을 탐구하는 것은 인문학, 사회과학 그리고 한국학 등 분과학문적 구획을 넘어서는 학문적 관심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인문학 그리고 한국학이 처한 내외적 학문 환경은 긴 호흡의 장기적 안목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며 ‘통섭’과 ‘융복합 연구’를 말하나 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구획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이영미 선생의 노작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는 무거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놀랍게도 20세기를 살아 냈던 한국인의 정체성과 감수성의 밑바닥을 자신의 연구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근대 한국인’의 기원과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가 어떠한 태도와 노력과 방법론 속에서 포착되어야 하는지를 사례로써 보여 준다. 방대한 자료를 다루는, 긴 호흡의 통사(通史)임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분석과 엄밀한 해석을 통해 구체적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저작은 상당한 학문적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또한 이 저작은 ‘신파성’을 핵심어로 ‘한국대중예술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대중으로서의 한국인이라는 총체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매우 놀라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개념으로도 실재로도 한손에 잡아내기 어려운 ‘한국의 대중’들이 이리하여 자신을 육체화하고 구상화할 수 있는 방법론적 대상으로 부각될 수 있게 됐다. 어디 ‘신파성’뿐이겠는가? 핵심어를 바꾸어 연구한다면 우리는 대중이라는 뭉게구름 속에 더 많은 형상의 길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중은 무지도, 신화도 아니다. 대중은 구성되는 존재이며 자발적으로 변화를 선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책은 강력하게 논증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저작은 흔히 말하는 분과학문적 구획들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우선 ‘100년간의 대중예술사’이다. 한국학을 포함하여 인문학 분야에서 세부적 전문성이 강조되고 논문 중심의 연구성과가 일반화되면서 ‘통사’(通史)가 출간되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이 책은 100년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거시적 통찰이야말로 ‘학문’이 담당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임무임을 소리 없이 설파하고 있다.


이 책의 학문적 성취는 100년이라는 긴 시간에만 있지 않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은 한 개인 연구자의 연구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이 책은 소설, 영화, 드라마, 대중가요, 그리고 만화에 이르기까지 대중예술의 거의 전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 대중예술의 주요 장르들을 횡단하며 ‘신파성’의 생성과 변이를 추적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다. 우리가 손쉽게 읽고 보고 듣고 버렸던 것들을 통해 한국인의 심미적 감수성의 궤적을 드러내는 과정은 자못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것은 이영미 선생의 이전 저작목록이 보여 주는바, 대중예술의 모든 장르들을 섭렵하며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해 온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분과학문 체제를 넘나드는 연구의 필요성은 이 책에 이르러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하여 이 연구서는 그간 대중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활동을 전개해 온 저자가 자신의 공력을 ‘신파성’이란 키워드로 모아 낸 노작이자, 20세기를 살아 냈던 한국인의 주요 미감을 분석함으로써 앞으로의 연구에 시금석을 마련한 저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학문 분야 중에서도 ‐ 언제나 중요성은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주류로 편입되지 않는 ‐ 대중예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업적을 산출한 저자의 지금까지의 업적도 이 상의 수상이유로 명시될 필요가 있다. TV드라마를 보며 일희일비하고, 영화와 만화 속에서 작은 위안을 얻으며, 대중가요를 귀에 달고 사는 그 대중들이 바로 지금의 ‘촛불혁명’의 주체라는 오늘날의 현실이 이 책의 존재의의와 가치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지훈국학상’ 심사위원회는 기쁜 마음으로 이영미 선생의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를 2017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바이며, 앞으로의 연구활동에서 더욱 빛나는 성취를 이루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제 17회 지훈국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박길성
심사위원 조성택・한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