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지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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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의 말나는 나에게 모여야 한다, 유쾌한 당신과 함께
지훈 선생의 고매한 얼로 주시는 이 상의 무게는 쉬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본격적인 시 쓰기에 발 디딘 지 만 스무 해가 지나도, 제 용렬한 그간의 좌충우돌의 행보가 미욱하기 짝이 없고 또 염려스럽기에, 이 상은 그간의 방황과 위태로운 행보와 지리멸렬한 시 쓰기의 와중(渦中)에 빠진 어리석은 소생에게 그래도 쉽게 포기를 몰랐던 미련함에 거는 황송한 기대라고 여깁니다.
꽃이 지기로소니
주렴 밖에 성긴 별이
귀촉도 울음 뒤에
촛불을 꺼야 하리
꽃 지는 그림자
하이얀 미닫이가
묻혀서 사는 이의
아는 이 있을까
꽃이 지는 아침은
이 선연하고 자명한 선생의 시엔 웃음을 넘어 울음의 고단하고 기꺼운 포용의 고요가 서렸습니다. 나 자신 외의 다른 무엇을 탓하지 않는 마음, 이 시의 고풍스러움은 결코 의고적(擬古的) 선비의 시풍 하나만을 헤아린 바가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보고 싶은 것은 저 울음의 깊고 높고 늡늡한 시적 포월(包越)로서의 사랑의 분위기입니다. 분별하는 이기적인 웃음의 편재(偏在)로 그늘을 넓혀 가는 세상에, 선생의 울음은 낙락하고 냅뜰성 있게 세계를 아우르는 포월의 심성입니다. 마음이 잘 읽히지 않고 마음이 잘 잡히지 않는 세상에 저 포월의 울음은 불안한 한반도의 난제를 푸는 마음열쇠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곧 인류의 모든 숨탄것들을 긍휼히 여기는 포월의 아침울음이어야 합니다. 또 새로이 시를 깨쳐나가야 할 제 자신을 변주하는 울음의 현몽입니다. 울음 한 번 잘 울고 나면, 부처가 오고 하느님이 오고 마호메트가 패키지로 우리 맘에 오지 않겠습니까.
제가 사랑의 무극(無極)을 말하기에 앞서, 저는 잡인(雜人)의 자유로움으로 여러 밑바닥에서 세상의 가장 허황된 높이를 아우르는 무극의 시쟁이를 꿈꿉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지구촌과 인류, 협량한 정치, 세계 도처의 테러리즘과 종교적 극단주의, 다양한 불평등과 불신들, 경제적 양극화의 그늘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인류애를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사실이 새삼스러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촌을 건너다보는 방심한 시쟁이의 누추(陋醜)한 고백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선비인 지훈 선생의 정신엔 누구도 함부로 핍박받을 수 없고 배척당할 수 없다는 늡늡하고 낙락한 인문주의자의 자애로운 품성이 있습니다. 그 올곧은 정신이 품는 넉넉한 난초향기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냅뜰성 있게 화해의 분위기를 새로 얼러 내 이 한반도의 백두에서 한라까지 다시 사는 시를 그려 봅니다.
척박해지는 한국의 문화적 토양에 못비를 주시는 조상호 사장님의 세심함과 대범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훈 선생의 고매한 넋 앞에 난초 몇 뿌리를 서려 두고자 합니다. 모처럼 술도 석 잔 올리고 싶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2016년 5월 모란꽃 이우는 날에 심사평본심에 오른 십여 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하였으나, 결정은 쉽지 않았다. 손에서 놓기 어려운 시집들이 여럿이었을 정도로 근년 우리 시단의 원로, 중견 시인들의 노작들에 깃든 내공에 심사위원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정된 분량을 살핀 소감이지만, 어떤 시집들은 후배 시인들의 분방한 개성과 대화하며 변화의 계기를 얻고 있었고, 또 어떤 시집들은 실험이면 실험, 서정이면 서정의길을 지키며 기왕의 자기 시세계를 심화시켜 가고 있었다. 각각의 개성들을 한 저울에 달기가 난감하여 심사위원들은 상의 위상과 시인의 위상을 견주어도 보고, 상이 기리는 분의 시세계에 비추어 시집의 앉음새를 살피기도 한 끝에, 유종인 시인의 시집 《양철지붕을 사야겠다》를 제 16회 지훈상 문학부문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유종인은 크고 으늑한 가슴에 뜻밖에도 섬섬옥수를 장착한 시인이다. 그의 시의 애잔하고도 유장한 호흡은 “두 개 차선을 걸치며 커브를 꺾는”(〈리무진을 보내다〉) 리무진의 움직임을 닮았다. 이 미려한 몸이 짚어 나가는 마음의 기착지들은, 오래된 옛날의 어느 시공이거나 눈 내리는 산야이거나 나무와 새 울음, 무덤과 이끼가 차려진 고요지대이다. 우리가 더는 현실이라고 부르지 않는 그곳의 정경을 이곳에 모셔 오는 것이 그의 골똘한 일인데, 이렇다 할 주장을 물려 두고 그 세계의 사물들을 지극정성으로 매만지고 있어 흔연한 느낌을 준다. 유종인 시인은 의고와 고답에 친숙하지만 그의 말과 사물이 새롭지 않거나 흐트러져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보법을 바꾸는 듯 의외의 느낌, 사유의 생산적 혼란이 조성되고, 이들은 또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운용에 의해 조율된다. 그의 시에서 버릴 말을 찾기 어려운 것은 그가 이미 버려서이다. 앞은 옛날에 닿고 뒤는 지금을 밟고 선 리무진의 긴 동체처럼 오래고 먼 것을 선호하는 그의 목소리는, 기실 어지러운 오늘의 현실을 고스란히 비춰 보여 주는 반성의 거울이기도 하다.
이 시집의 자연 취향을 음미하다 보면, 지금의 한국시에는 어쩌면 자연이 너무 부족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 입은 자연의 상상적 향유도 문제지만 있는 자연을 외면하는 것도 어떤 게으름이 아닐까. 자연은 그저 허망한가상의 매트릭스가 아니라 “도심의 숨겨진 뒤뜰 같은 들판”(〈주문〉)처럼 문 열고 한 발 나서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방의 옆방은 자연”(〈이사〉)이라고 김수영은 노래한 바 있다. 이 시집에는 자연 속에 들어가 웅얼거리는 사람의 자연이 들어 있다. 이것은 자연을 건너다보고 인간적 시선으로 편집・가공하는 숱한 자연파 시인들의 경우와는 달리, 훼손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더불어 앓으며 그 본연의 상태를 끈기 있게 탐구해 얻은 시적 성취이다. 자연은 이런 모습과 소리와 향기를 지닌 숱한 조수충어(鳥獸蟲魚)들과 말 없지만 뜻있는 사물들의 세계였구나, 그래서 자연과의 교감이란 이런 자세와 절차에 따라야 하는 것이었구나 싶은 새 앎을 선사한다. 시인은 그 자연 속의 보행자이자 관찰자이고, “장고에 빠져 골똘해지는 돌”(〈저녁의 포석〉)처럼 마음을 다해 꽃, 나무, 짐승, 바람을 부르는 대화자이다. 앎을 가지고 그리로 가지 않고 가서 앎을 얻어 오기에 시인이 바라는바 마음의 평화라는 것도 행간에 겸허히 배어날 뿐이다. 이 시집의 자연은 따라서 인간사의 손쉬운 유비가 되지 않고 인간의 상념이 다하는 지점에서도 제자리를 오롯이 지켜 내는 듯하다. 요컨대 이 시집의 자연은 관념의 거처가아니라 생동하는 감각의 세계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집의 이와 같은 면모를 높이 샀다. 유종인 시의 웅숭깊은서정은 ‘지훈’ 시의 고전주의적 기품에 닿아 있는 것이면서, 동시대 우리 시의변화무쌍한 흐름 속을 조용히 흘러온 저류의 하나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외롭고 꿋꿋이 이어 온 노력을 상이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듯하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제 16회 지훈문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김사인 심사위원 김기택・이영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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