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지훈국학상

수상자
이강옥
수상작품
《일화의 형성원리와 서술미학》
수상자의 말

지훈 선생의 고결한 뜻과 가르침을 기리는 지훈상을 받게 된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훈상 운영위원님과 심사위원님, 나남문화재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수상의 기쁨은 금방 부끄러움으로 변합니다. 선생의 문학적 치열함과 학문적 올곧음 앞에서 부끄러워집니다. 알차고 탁월한 학문의 세계를 묵묵히 꾸려 가는 동학들 앞에서 부끄러워집니다.

 

낙동강 하천부지를 경작하시던 농부의 몸에서 태어나 땅의 품에서 뒹굴던 제가 학자 행세를 해온 것을 떠올리면 다른 부끄러움이 일어납니다. 학문의 세상에서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의 부실함과 방관이 부끄러웠습니다. 화평하면서도 서글픈 낙동강의 구비와 파도 소리, 쪽빛 물결, 그리고 고향 땅의 냄새는 제 공부의 화두였습니다. 논밭을 냄새로 기억하는 저는 농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농부인 저는 농사짓듯 공부했지만, 학자 행세를 하며 얻은 관념과 도식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래도 제 학문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도록 안간힘을 썼습니다.
 
일화를 형성 과정과 세계관에서 두루 현실적인 갈래라 규정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우리 서사문학사의 한 맥을 찾아보고자 한 것은 이러한 저의 경험과 고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서사학자들이 허구성을 서사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지만, 저는 허구가 아닌 실재를 담은 일화도 당당히 서사의 영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일화가 미미하나마 서사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서사학자이면서도 허구보다는 현실에 더 집착한 저의 태도는 야담을 공부한 데서부터 마련되었습니다. 1970〜1980년대 시대의 격동 가장자리에 섰던 저는 야담을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청년 학자로서 시대의 요청에 떳떳하게 호응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야담을 통해 조선 후기 문학의 저력을 입증하고 근대 문학의 형성을 주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서사문학은 사람과 세계의 갈등을 보여 주다가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야담에 대한 연구도 사람의 해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해방은 개개인이 가진 은밀한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켜 줄 때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전제였고, 야담 연구에서 그 점을 온전하게 논증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전제가 근대적 사유와 감정을 최고의 기준으로 설정한 인식적 편협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간 제 학문의 여정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아집과 분별, 편견과 욕심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야담에 대한 연구가 욕망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이었다면, 〈구운몽〉에 대한 연구는 욕망의 뿌리를 파내고 아상(我相)의 그림자를 벗어던지는 쪽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구운몽〉을 불교적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그 결과를 문학치료와 문학교육에 응용하고자 하였습니다. 〈구운몽〉은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라는 가르침을 충격적으로 베풀며 분별적 이분법을 타파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행복한 삶을 꾸리는 지혜가 있다는 것도 보여 주었습니다.
 
야담에서 〈구운몽〉으로 나아간 정신은 《일화의 형성원리와 서술미학》에 고스란히 둥지를 틀었습니다. 민중의 일상은 물론 사대부의 일상에서도 이야기판이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평민 일화와 사대부 일화의 형성에 원동력이 되었음을 밝혀내었습니다. 일화 속에는 가문과 개인이 결코 억누르거나 숨길 수 없는 회한과 소망이 깃든 것도 알았습니다. 두서없이 말하고 한가하게 쓴 일화에 고유한 서술미학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저는 일화 연구를 통하여 어느 시대 어떤 현실에도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내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현실의 사악함과 험상궂음이 도드라졌습니다. 그것이 이 책의 역설이면서 저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추하고 사악한 현실의 구석구석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할 것입니다. 그러는 것이 일화 연구의 본령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개의 티끌 속에 우주가 깃들어 있다는 징표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한 티끌 속에 깃든 온 우주의 마음을 더듬을 수 있는 초라하지만 뚜렷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중생의 존재가 부처의 전제이듯, 험상궂음과 사악함은 자비로움과 진정성의 표징이라는 가르침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온갖 상대적 개념의 올가미를 벗어나는 순간 감격적으로 목도할 그 비약을 그리워합니다.
 
일화는 무미건조하게 그냥 반복되기만 하는 것 같은 우리 삶에서 독특한 무늬와 결을 찾아내려는 섬세한 마음의 소산입니다. 일화는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진부하고 허망한 일상을 아름답고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서사문학 중에서 가장 짧고 하찮은 내용과 형식을 갖춘 일화가 이렇게 일상에 빛을 던진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티끌과 환몽이 진여와 해탈이라는 가르침을 감동적으로 확인해 줍니다.
 
수상 통보를 받고 나남출판에서 펴낸 《조지훈 전집》을 통독했습니다. 거기 지훈 선생의 글들을 통해서도 이분법의 절대적 초월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월정사 강원 외전강사와 동국대학교 역경원 전문위원을 역임하시고 일본 선승과도 선문답을 이끄신 지훈 선생의 불교적 혜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양해화상(亮海和尙)에게 보낸 편지에서 티끌 같은 세속과 깨달음 세계의 관계를 역설하고 계셨습니다. 그 핵심부분을 읽어 봅니다.
 
현실존재로서의 동탁은 허망한 환화(幻化)이지만 원융의 실재로서의 동탁은 진실불허(眞實不虛)하다는 말입니다. 형이 만일 이 말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형은 일체중생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불성(佛性)을 가졌다는 말을 인정할 근거를 상실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하므로 모든 것은 다 같은 우주, 불성을 지닌 것이니 그래도 양해와 동탁은 같을 수 없습니까? 그러면 그대가 이룰 부처와 내가 이룰 부처는 같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형은 무슨 근거로 일체가 영

원히 상즉(相卽)할 수 없음을 주장합니까(〈반야사상에 대하여-亮海和尙에 답하는 글〉, 《조지훈 전집》 4).
이렇게 지훈 선생은 티끌 같은 세속의 중생이 바로 부처임을 설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점을 명징한 시적 언어로 형상화했습니다. 〈승무〉의 다음 구절입니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세상살이에 시달린 사람의 눈물은 고통에서 비롯했지만 정제되었기에 그 눈물이야말로 별빛처럼 아름다우며 또 해탈의 경계를 향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짙은 번뇌만이 진정한 해탈로 가는 길이라는 점에서 역설이라고도 해석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지훈 선생의 드높은 근기(根機)를 이해하지 못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세상살이에 시달리는 갑남을녀의 번뇌는 승화시킬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별빛이요 해탈이요 열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훈 선생의 이런 통찰에서 의상대사 법성게(法性偈)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眞性甚深極微妙 진정한 본성은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해서
不守自性隨緣成 자성은 없고 모두 다 인연을 따라 이루어질 뿐이지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일체 속에 하나가 있다네.
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그대로 하나이네
一微塵中含十方 한 개 작은 티끌에 시방 우주가 깃들어 있고
一切塵中亦如是 다른 모든 티끌들 속에도 온 우주가 다 깃들어 있다네.
 
지훈 선생과 의상대사의 깊은 통찰과 가르침이 일화에 대한 저의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환희심을 느낍니다. 형식적으로 서사문학 중 가장 볼품없이 짧은 일화, 내용적으로 쓰잘 데 없고 실없는 이야기를 담기도 한 일화, 그것은 하찮은 티끌과 중생을 닮아 있습니다. 그런 일화가 모든 서사문학의 원천이요 구성요소이며, 그 어떤 서사문학조차 해낼 수 없는 소중한 위안과 치유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이 본래 성불해 있듯, 일화 속에 우리나라의 모든 거대 서사문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런 일화를 연구한 저를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분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간절히 초심을 떠올리며 더 낮게 살아가겠습니다. 세세생생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언제나 되새기며 성찰과 수행에 남은 힘을 바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강옥
심사평

개나리 피자마자 어느새 벚꽃이 어울리더니 뒤늦게 핀 진달래가 한데 어우러졌습니다. 요즘 봄날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봄날의 아름다움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잠시잠깐이어서인지 우리 마음에 더 소중하게 와 닿습니다.

 

때마침 지훈 선생의 〈落花〉가 나지막이 귀전에 울려오는 듯합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심사위원들은 지난 4월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지훈 선생이 봄날을 지새우면서 남긴, 저렇게도 아름다운 노래를 생생하게 느끼는 듯, 저희들은 저마다 노랑, 분홍, 하양 꽃빛깔을 술잔에 담아 넘겼지요. 그때 지훈국학상 분야를 국문학 쪽으로, 특히 고전문학 쪽으로 정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쉼 없이 차분하게 정진한 결실물을 낸다. 곁들여 최근 2, 3년 사이에 나온 연구성과 중에서 오랫동안 기초를 다지고 자료를 재음미하고 정리한 연구서, 재치 있고 현란하기보다는 묵직하고 그러면서도 은은한 향기를 내는 연구서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이강옥 교수의 《일화의 형성원리와 서술미학》(2014)이 거론되었습니다. 그런데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중반 정도의 학자를 찾아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모두 동의하고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벚꽃이 봄바람에 화사하게 흩날렸고, 뒤이어 내린 이화우(梨花雨)는 깊은 밤 달빛을 하얗게 되비추었습니다. 그동안 심사위원들은 한문학, 고전시가, 고전소설, 구비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나온 연구서들을 이리저리 물색했습니다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연구자의 폭을 40대 이전으로까지 넓혀 보기도 했습니다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저희 심사위원들은 처음에 거론했던 이강옥 교수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일화의 형성원리와 서술미학》(2014)에 따르면, 일화는 ‘잡록’, ‘필기’, ‘잡기’, ‘패설’ 등으로 지칭되는 책에 실려 있는 아주 짧은 서사작품들로서,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생긴 현상 중 특별한 것을 서술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화의 묘미는 일상적 삶의 질서로부터 일탈된 행동이나 말, 상황이 창출하는 특별함에서 비롯한다고 합니다. 이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일화 성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탈’이며, 일화의 일탈은 ‘밖으로의 일탈’, ‘아래로의 일탈’, ‘위로의 일탈’로 나뉘는바, 일화는 이런 탈규범적 일탈을 포착하지만, 그 귀결점은 규범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교수는 조선 일화가 생활 이야기판의 성향을 띠며, 그 이야기판이 점차 탈이념적 서사의 형태를 띠는 쪽으로 변했음을 읽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 교수는 고려의 인물 일화와 송대 일화의 연구를 덧붙이고, 일화의 서술유형과 서술원리를 추출하고, 조선잡록집의 존재 양상 을 규명함으로써 일화 전반의 양상을 규명하는 데까지 논증의 폭을 확대 했습니다.
 
이강옥 교수의 《일화의 형성원리와 서술미학》(2014)은 짧은 시간 안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일화 연구》(1998)를 낸 이후로 오랫동안 고찰하고 체계화하여 17년 만에 내놓은 연구성과입니다. 특히 이 교수는 기존의 허구성을 전제로 하던 서사 연구 풍토에서 허구성보다 는 실재성이 짙은 일화를 서사 영역에 포함시켜 서사 연구의 편폭을 넓히 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덧붙여 이강옥 교수는 《한국 야담 연구》(2006) 를 내놓음으로써 일화의 실재성에 치우치지 않고 허구성을 지닌 야담 연 구를 통하여 서사 연구의 균형감을 확보했음은 물론입니다.
 
창의성, 콘텐츠, 흥행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차분하고 논증적인 연구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강옥 교수의 연구 활 동은 우리 국학 연구에서 하나의 본보기가 되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강옥 교수의 밀도 있는 연구 활동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제 15회 지훈국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심경호
심사위원 조광국·조해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