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지훈국학상

수상자
정병욱
수상작품
《식민지 불온열전》
수상자의 말

사학자는 일생에 한두 번은 운명 같은 자료와 만난다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저를 이르게 하고 당분간 저와 함께 할 자료가 그런 자료인가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인 2006년, 제가 전 직장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민족독립운동 관련 자료집을 낼 때입니다. 그해 내야 될 자료는 이른바 “연희전문(延禧專門) 적화사건(赤化事件)”이었습니다. 이 자료를 간행하겠다고 상관에게 보고하자 민족독립운동이란 자료집에 ‘적화사건’이 좀 그렇다며 다른 사건을 찾아보라 하시더군요. ‘아, 요새도 이러나’ 싶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이 양적으로도 우세했고, 또 열심히 독립운동을 한 사실은 이제 상식인데. 제목을 좀 순화시켜서 보고할 걸, 후회했지만 늦었습니다.


대체할 사건이나 자료를 급하게 찾다가 만난 이들이 강상규(姜祥奎), 김영배(金永培)와 같은 《식민지 불온열전》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탈초(脫草)된 원고를 읽어보니 큰 사건은 아니지만 일제 말기의 사회상을 잘 보여 주고 인물들도 생생했습니다. 자연히 원 자료에 관심이 가더군요. 원 자료는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 그중에서 사상사건을 전담하는 사상부(思想部)가 남긴 것으로 자료의 양이 방대했습니다. 유명한 사람도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보통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일제 검・경도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작은 사건들을 크게 사상사건으로 엮어 실적을 올렸더군요. 이걸 다 언제 간행하지 싶었지만 일단 먼저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세 권의 해제집을 펴냈습니다(2007~2008년).


원 자료를 가까이 하면서 이상했던 것은 당시 대표적인 인물, 사건에 관한 자료가 적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것은 어디 있지? 그때 한 연구자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자료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가 연 결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자료는 민족해방운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워낙 유명한 자료라 그런가보 다 했는데, 한번 보고 싶어지더군요. 이래서 김준엽 선생님이 남긴 자료 군(群)을 만나게 됩니다.


김준엽 선생님과 자료에 관해 더 얘기하기 전에 잠시 《식민지 불온열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학의 서사적 전통을 복원했다’, ‘본격 적인 일상사・미시사다’ 등 국내외의 성원에서 오늘의 과분한 지훈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만, 제가 자료에서 주인공들을 만 나 글을 쓸 때 저의 각오는 하나였습니다. ‘나는 일제시기에 대해서 모른 다. 일단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그들이 경험한 걸 따라 해보자.’ 그들이 본 영화를 찾아보고, 읽은 책을 읽어 보고, 그들이 걸은 거리를 걸어 보았습니다. 글이란 묘한 게, 저의 이런 심정이나 의도 가 전해지나 봅니다. 어떤 평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내가 식민 지 시절을 살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게 된다. 정병욱의 서사에는 이 런 상상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고 하네요. 글을 쓰면서 계속 제가 했던 질 문이 바로 ‘나라면 어떠했을까’입니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분명 이 책의 글은 ‘논문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야기식’만도 아닙니다. ‘이야기식’을 주로 하고 논문식을 종으로 했다고 할까요. 중요한 것은 글이 다루는 대상이고 대상의 진 실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글쓰기 방법을 찾아본 것입니다. 또한 전문성과 대중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겠다는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대학에 자리 잡는 것을 접고 나만의 길을 가보자고 결심했던 때라 좀더 과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식민지 불온열전》을 두 편 썼습니다.


사람일은 모른다더니, ‘교수 안 돼도 좋다’는 각오로 썼던 《불온열전》 덕분에 2010년 가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교수가 됐습니다. 민족문화연구원에서는 매주 월요일 연구자들이 모여 발표와 토론을 합니다. 그 토론회장 한쪽 벽면엔 역대 원장, 소장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지훈 선생님은 1963년부터 작고하신 1968년까지 1, 2대 소장을 맡으셨습니다.


고려대학교에 근무하면서 김준엽 선생님이 남겨놓은 자료들을 가까이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식민지 불온열전》의 나머지 두 편도 완성했습니다. 아울러 그 자료군의 소종래(所從來)를 조사했습니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조사하면 할수록 떠오르는 생각은 ‘광복군의 마지막 좌우합작(左右合作)’이었습니다. 무슨 소린가 하시겠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김준엽 선생님은 1960년대 초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공산권 연구를 조직하면서 자료수집에 나섭니다. 자세한 얘기는 다른 글에 썼습니다만, 어찌어찌 하여 당시 검찰청 문서 창고에서 예의 사상사건, 사상정보 자료들을 입수합니다.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1967년부터 1976년까지 《한국공산주의운동사》 다섯 권을 펴냅니다. 물론 이 책은 반공적입니다. 제가 일본의 저명한 학자에게 김준엽 선생님의 ‘좌우합작’을 얘기했다가 들은 반론도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반공적인 공산주의운동사를 쓸 수 있냐’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박정희 정권 때였습니다. 공산주의운동사 원고는 중앙정보부에서 한줄 한줄 검사를 받았다고 하는군요. 아쉽고 갑갑했을 겁니다. 김준엽 선생님은 다시 1979~1980년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자료편》 두 권을 펴냅니다. 서문을 보면 귀중한 자료가 “망각지대로 내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자료집 편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운동사 서술로는 뭔가 부족하여, 자료가 스스로 말하게 한 것이죠.


조지훈 선생님이 1964년에 쓴 《한국민족운동사》를 보면 일제 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좌익계를 받아들인 ‘연립정부’로 정의했습니다. 일제라는 외세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운동세력은 좌와 우를 막론하고 독립이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일의 합작, 즉 통일전선을 펴야 했죠. 조지훈 선생님은 그런 임시정부의 통일전선을 ‘연립정부’로 명명하고 적극 평가한 것입니다. 그 시대를 제대로 살아낸 사람이라면 상식에 속하는 일이겠죠. 아무튼 해방 이후 일제는 물러갔지만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이 계속됩니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제 장교가 수장이 된 나라에서, 그의 수족이 구석구석 감시하는 나라에서, 마지막 광복군 김준엽은 좌익 쪽의 자료가 망실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자료집을 준비합니다. 광복군이 자료로 펼치는 마지막 좌우합작, 좌우 통일전선이 아닐까요. 이 자료편과 이에 실리지 못한 수집 자료들은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민족해방운동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저는 요즘 이 자료군을 보면서 ‘지금 여기’와 제가 속한 1980년대 민주화 세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게 됩니다. 1980년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여러 연구자들이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논문과 책을 쓰고 자료집도 내며 높은 성취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인미답의 자료가 많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찾는 사람이 뜸해졌습니다. 이 자료들을 이용한 연구성과가 거의 나오지 않더군요. 아마 시대가 변해서 그렇고, 이용하기 불편해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논문쓰기에 바빴던지 어느 누구도 자료의 계통, 소종래에 대해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뒤에 찾아오는 사람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입구는 수렁에 빠졌고 그 너머로는 《식민지 불온열전》의 주인공과 같은 많은 선인(先人)들이 후대를 기다리다 망각지대로 침몰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저도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이나 작업이 아닙니다. 그래도 미래의 누군가는 이름 없고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제 이름과 역사를 찾아 주겠죠. 세상이 변하면 다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어떤 통일전선을 펼칠지 누가 알겠습니까. 미래에 찾아올 그들을 위해 입구의 기초를 다시 세우고 좋은 길잡이가 될 안내판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저와 저의 세대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당분간 이 작업에 매진하겠습니다. 오늘도 조지훈 선생님이 기틀을 마련한 민족문화연구원의 한 연구실에서 김준엽 선생님의 고투(苦鬪)로 후대에 전해진 자료를 보면서 다짐해 봅니다.


끝으로 부족한 저에게 과분한 상을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 선생님, 이러한 자리를 만들어 주신 지훈상운영위원회, 나남출판사 조상호 대표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여러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병욱

심사평

2014년 한국사회는 침몰을 공감하면서 공분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쌍끌이체제를 내세우며 달려왔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물질적 성장과 개발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묻고 가야 하지만,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자책 또한 무겁게 져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와중에서 한국의 인문학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정신없이 치닫던 경제성장 지상주의, 그로 인해 파생된 인권 경시와 공동체 해체에 대응하며 인간 중심의 균형적 사회발전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냉전체제의 해체, 한국사회의 ‘일정한’ 민주화, IMF체제의 경험과 극복과 정에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인문학을 ‘비판을 위한 비판’ 혹은 ‘공허한 현학’ 정도로 치부하면서 그 사회적 역할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농후해졌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인문학 연구자 스스로 자 초한 바 크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자 사회비판의 발신지로서의 기 능을 저버리고 취업 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대학의 연 구자들 역시 자본의 요구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인간 중심의 자유와 평 등을 추구하는 인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인문학 역시 이 매서운 칼바람 앞에 옷깃을 여민 채 숨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인문학의 위기’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시적 성과는 이른바 ‘인문학 대중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일시적이거나 자기만족적인 ‘힐링’ 또는 ‘자기계발’ 담론의 배양소로서, 인문학의 ‘경영학화’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제 이 시대의 인문학이 갖는 의미를 다시금 심각하게 새겨봐야 할 때다. 인문학은 주류가 되려고 애쓸 때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는 비유의 역설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2014년 <지훈국학상>은 한국사회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사회의 아픈 부분을 과감히 도려낼 수 있도록 성찰의 기회를 되새김하는 권위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 인문학이 가져야 할 비판적 성찰과 ‘비주류성’이 내뿜는 더 없이 깊은 가치를 되새기면서 이러한 요구에 조응하는 인문학 연구를 발굴하고 진작시켜야 할 책무가 새삼스럽게 크게 느껴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결코 놓칠 수 없는 올바른 민주주의의 실현에 적극 기여하며 이를 선도할 수 있는 인문학 연구가 이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번 <지훈국학상> 수상자 선정은 심사위원들이 이러한 시대적・사회적 책임감을 깊이 느끼면서 진행되었다. 심사위원회에서는 정병욱 교수의 《식민지 불온열전》이 눈에 띄는 성과라는 점에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무엇보다 ‘불온’의 키워드가 상징적이다. ‘불온’은 현실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맞선다는 의미가 있고 통상 지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불온(不穩)의 본래 뜻은 ‘평온하지 않음’이며, 통치 권력이나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태도나 기질을 말한다.


정병욱 교수는 ‘불의의 시대’였던 일제 식민지하 조선에서 식민지 권력 타도, 식민지 해방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은 없었더라도, 식민통치에 의해 뭔가 평온하지 않은 상태에 놓였으며, 이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문제제기를 했던 사람들을 “역사학의 서사적 전통을 복원”하는 이야기체 서술로 꼼꼼히,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정 교수는 식민지기를 거치며 부정적 의미가 된 ‘불온’이 현재까지도 지속되며 그 의미가 심대하다고 지적한다. 식민지 유산의 ‘부정적’ 연속의 문제로, 식민지 권력은 ‘불온’을 처벌하는 수준이었지만, ‘분단과 전쟁’은 이것을 아예 제거해버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온이 없는 사회에서 독재는 시작된다”는 저자의 말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불온’ 속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모색이 비로소 태동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인문학의 성찰적 자세와 함께 연구자가 지녀야 할 학문적 태도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각각 인물의 행위에 대한 ‘디테일’의 풍부한 복원이다. 저자는 문헌 사료뿐 아니라 주인공의 활동 무대를 몇 차례씩 답사하고 관계자를 인터뷰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애씀이 책의 생생함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학이 박제화된 사료에 의존하여 독자에 다가가지 못하고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는 아카데미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이드로서 동료 연구자 및 후학들에게 좋은 제안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또 하나의 키워드로 ‘열전’을 들 수 있다. 그간 많은 인문학 연구자들이 학문의 ‘대중화’를 고민했다. 강단에 머무는 아카데미즘을 벗어나 대중과 소통하며 함께 성찰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바람을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이 역시 대중은 수동적 대상이거나 말을 걸어야 하는 ‘타자’였다. 정 교수는 이러한 대중을 바로 역사의 ‘주체’로 세우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스테레오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전라도 부농 출신의 경기공립중학생 강상규, 안성의 자소작농 김영배, 만보산사건 이후 배외주의적 민족의식과 도시 일용노동시장을 둘러싼 경쟁 하에서 중국인 습격사건에 가담한 도시빈민 신설리패, 민족차별 교육 속에서 반일 낙서를 했던 김창환을 중심으로 한 어린 학생들 등이다.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고 기록하지 못해 불특정 다수로 묻혀갔던 각 시대의 ‘우리들’이다. 바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개인 주체가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 불온열전》은 역사의 민주주의를 실현해 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자나 영웅의 행적을 뒤쫓고, 거대한 사회구조를 그려 내는 역사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딛고 평범한 우리들의 열전을 발로 뛰며 써내려 간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역사학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들을 함께 생각하면서 2014년 <지훈국학상> 심사위원회는 정병욱 교수의 《식민지 불온열전》을 수상대상으로 선정했다. 2014년 <지훈국학상> 선정은 이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는 많은 분들의 외침에 다가가려는 시도라고 봐주면 좋겠다. 수상자에게도 <지훈국학상>이 이후 더욱 의미 있고 발전적인 연구활동을 열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제14회 지훈국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조성택
심사위원 정태헌・김성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