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지훈국학상

수상자
김영미(金榮美)
수상작품
《그들의 새마을운동》
수상자의 말

제11회 지훈국학상에 저의 저서《그들의 새마을운동》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왜 이런 상을 받게 되었는지 참으로 어리둥절하고 송구할 뿐입니다. 한 편의 저서가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갔다면 그건 저자 한 사람의 공이 아닐 것입니다.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책에는 제 삶, 부모의 삶, 가족의 삶, 친구와 동료의 삶, 편집인의 삶, 그리고 역사 속의 당대를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애환, 고뇌가 밑거름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수상자가 아니라 바로 그 모든 분들이 수상자이십니다. 그 분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세상에 드러내어 주신 나남문화재단 조상호 이사장님, 지훈상 운영위원회, 심사위원님들, 그리고 이 귀한 분들을 한 자리에 모아주신 지훈 조동탁 선생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조지훈님은 고등학교 때 ‘승무’라는 시로 접했습니다. 처음에 지훈상을 수여한다 하여 의아했습니다. 제가 무슨 시인도 문인도 아닌데 왜 그 상을 받는지 어리둥절했지요. 그런데 그 분이 훌륭한 시인일 뿐 아니라 탁월한 역사학자이자 인문학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족운동사 분야의 많은 업적을 내신 장석흥 선생님께서는 그 분의 민족운동사에 대한 정리는 지금 역사학자의 눈으로 보아도 아주 뛰어나다는 평가를 하셨습니다. 지훈상이 문학분야와 국학분야로 수여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지훈님과 저의 인연은 조금 더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제가 몸담고 있는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조동걸 교수님이 바로 조지훈님과 같은 한양 조씨로서 주실마을 출신이십니다. 두 분의 생가가 이웃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수상식에 오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대표시 ‘승무’가 말해주듯이 조지훈님은 불교와 인연이 깊은 분인 듯합니다. 저 역시 부친이 출가를 하신 사실이 있어 불교와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작은 인연의 끈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여기서 그치지 말았으면 하는 욕심이 듭니다.《지훈상》책에서 조지훈님의 시 ‘빛을 찾아가는 길’을 읽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굴곡의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삶을 ‘빛을 찾아가는 길’로 표현한 그분의 지조와 격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상의 수상에 과분함을 느끼면서도 저 역시 시인을 닮아 ‘빛을 찾아가는 길’로서 인생을 대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도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난세입니다. 삶이란 한 순간도 녹록하지 않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하게 됩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 돈도 명예도 아닌 ‘빛’이라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인의 격조를 본받고 싶습니다. 그것이 시인과 제가 맺는 더 큰 인연이었으면 합니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저의 관심은 새마을운동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새마을운동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에 대한 농민사회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마을운동을 연구 테마로 설정했다면 저의 관심은 처음부터 정부의 역할을 탐구하는 데만 집중되었을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침묵되거나 아니면 국가나 정치세력의 계몽의 대상으로만 존재해온 민중들의 생활세계를 식민지, 해방공간, 한국전쟁기, 그리고 그 이후 시간적 계기를 따라 추적해 가면서 새마을운동이라는 사건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은 1971년 전국 33,267개 동리에 시멘트 300부대의 지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멘트를 어떻게 사용할지, 국가의 정책을 어떻게 수용할지 결정했던 직접적인 주체는 농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지역사회의 토착적인 관습과 문화, 식민지ㆍ해방ㆍ전쟁을 통한 사회변화의 규정력, 기존의 정부와 정치세력의 농촌정책에 대한 경험, 자발적으로 전개된 민중사회의 자기 회생의 노력 등이 그들의 행위 방식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경험의 세계에서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부의 정책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이 운동이 1970년대라는 시점에서 강렬하게 점화된 데에는 정부의 의도와 무관한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민중들의 생활세계와 경험세계에 접맥되는 새마을운동의 그러한 역사성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경험세계로부터 새마을운동의 역사성을 조망함으로써 국가사의 틀을 보완하고 나아가서 농촌 혹은 농민사회에 대한 역사상을 재구성하려는 것이 이 책의 집필의도입니다.

2008년 가을 이 책을 쓰면서 참 고독했습니다. 단행본 집필이란 논문과 달리 참으로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희망적이었다가 다음날에는 절망이 몰려왔습니다. 과연 이것이 책이 될 것인지 이 작업이 의미가 있기나 한 것인지 두려웠습니다. 교수가 되려면 논문을 써야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래도 학자이고 싶었고 늦기 전에 제 오랜 연구에 일단락을 지어야 한다는 갈망이 더 컸습니다. 고독감을 떨치기 위해 절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만물에게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모두 잠들어 있는 첫 새벽에 일어나면서 저는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고독이 편안해졌습니다. 새벽에 일어난 첫날 그 감동을 담아 시를 썼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시를 낭송하며 수상소감을 마치려 합니다.

첫 새벽을 맞으며

자욱한 새벽안개 속
검은 산 능선 너머 하늘이 밝아옵니다.
하늘이 열리고 있어요.
새벽에도 풀벌레가 운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밤과 달라요.
조용하고 상냥한 소리들입니다.
새들이 이렇게 잠꾸러기인 줄도 알았습니다.
매일 아침 먼저 일어나
부산스레 저의 잠을 깨우더니
이놈들도 아직 자고 있어요.
고랑에 물도 새벽에는 얌전히 흐른답니다.

새벽은 신성합니다.

우주의 신성이 제 머리 어깨
온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낍니다.
깨어서 새벽을 맞이하니
제가 우주의 사랑받는
자연임을 비로소 느끼게 됩니다.
이제 약수터에 나가서
시원한 약수 한 모금을 먹고
새벽하늘을 마음껏 보렵니다.

산사의 아버님,
당신은 이렇게 매일 깨어서 새벽을 맞이하시는군요.

2008. 9. 23.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심사평

이 책은 새마을운동과 관련하여 모범마을과 농촌운동가 한 사례씩을 조명한 것으로서, 여러 측면에서 학술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민중을 역사의 중심에 놓고 연구했다는 데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동안 새마을운동은 정부 시책의 측면에서 바라보아 왔는데, 이 책에서는 농민의 시선에서 접근한 것이다. 과거에 민중을 역사의 주어로 삼아야 한다는 당위적 발언은 적지 않았지만, 실제 그런 연구를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연구는 정식으로 민중을 주어로 하는 역사를 정밀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민중사의 한 표준을 이루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저작이 동원한 자료가 주목된다. 민중은 일반적으로 사료를 남기지 않는다. 농민과 농촌, 혹은 농촌운동, 농민운동을 연구한다 할지라도 연구자들은 문헌 자료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 민중의 입장을 탈색시킨 저널리즘이거나 정부의 관찬 자료일 것이다. 사료 비판을 가한다 할지라도 민중의 생각과 삶을 정확하게 인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저작은 구술을 채록하는 방식으로 농민과 농촌, 농민운동, 농촌운동의 생생한 자료를 확보하였다. 물론 기억에 의한 구술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민중의 입에서 흘러나온 일차적 자료라는 데 가장 큰 강점이 있다. 구술로 근대를 체험했던 민중의 삶과 의식을 채취하고, 그것을 사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저작은 과거 주로 문헌에만 의지했던 역사학 연구의 방법을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구술사, 경험사를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데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역사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새마을운동을 다루었다는 점도 의미 있는 일로 아울러 지적할 필요가 있다.

수상자는 이 책 출간 4개월 전에《동원과 저항》(푸른역사, 2009. 2.)을 출간했다. 이 책은 박사학위논문으로서 동회(洞會) 연구를 통해 해방공간의 사회사를 연구한 것이다. 이 책에서도 주민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였고, 해방공간을 식민지사회와의 단절이 아닌 연속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는 데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우수한 학위논문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점에서 상기 저자는 수상자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