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지훈국학상

수상자
한국고전의례연구회
수상작품
《국역 상변통고》
수상자의 말

예학이란 학문은 아직도 재야의 촌학구가 수백 년 낡은 관습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맹목으로 전수하는 지나간 시대의 빛바랜 허울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그것을 조선말 개항 이후의 일로 돌릴 수만은 없습니다. 학문이라는 말이 유가의 전유물이었던 조선시대는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 공자가 노자를 찾아 예를 물었던 그 시대에도, 예절이란 담론은 본디 그 근본에서 벗어나 허례허식의 말절에 흐르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주제였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감놔라 배놔라 하는 자잘한 절도가 굶주림과 억압에 지친 민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이해타산을 가지고 본다면 예악(禮樂)의 문명이란 그야말로 공리공담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실속도 없는 명분과 절차를 빌미로 정치 파당이 나뉘고 학문 정통의 시비를 가리는 일이 일어난 적도 있으니, 그 말폐는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다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시대의 예학은 당초부터 민족적인 그 무엇이라고 볼 성질의 학문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변문화의 비속성, 이적 즉 야만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자는 중세 지식인들의 세계화, 곧 문명화를 위한 교화의 산물이었고, 그것은 따라서 중세적 세계문화표준에의 동화공작의 표방이었던 것도 어김없는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저희들이 조선조의 예서와 예학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다만 조선왕조시대의 학자들이 성취한 학술 가운데 가장 정치하고 괄목할 만한 체계를 이룬 학문이었다는 이유 외에, 그것이 조선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 저변에 깊게 뿌리내린 도덕윤리와 사회풍속의 근간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굳이 예학 본령의 미묘한 이치를 논하는 학자들이 아니라도, 생산기반과 생활환경이 크게 변한 오늘날에도 한국 가정의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게 여전히 “문지방 밟지 말라”는 훈계를 하거나, ‘사람됨’을 논하는 한국 사람들의 말꼬리마다 대개 ‘예’나 ‘예절’이라는 말이 따라다닙니다. 그것은 분명 ‘사람됨’의 미덕을 ‘인문(人文)’으로 논하는 예학의 학문 전통에서 유출된 것이고, 저희들이 정작 논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다움을 예의 절도로 규정해 온 인문학으로서의 예학입니다.

조지훈 선생은 한국사상을 논한 짤막한 한 논평에서 ‘한국만이 가진 한국의 고유사상은 없다’는 일반의 견해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여, ‘문화라든지 사상은 이동하고 복합되는 것이 본질이고’, ‘문화 또는 사상이란 것은 인류 일반의 생활과 사고방식의 민족개성적인 양식화란 뜻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면서,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어떻게 변했든지 역사적으로 생성되어서 오늘의 개성을 지닌 하나의 문화와 사상을 이루었다면 그것이 곧 한국문화요 한국사상’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문화와 사상은 이동하고 융합되면서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일정한 개성을 나타낸다는 관점에서 보면, 조선왕조시대에 성행하였던 예학은 문화 이동과 복합을 통하여 한국적 특색을 갖추었던 한국 ‘고유의’ 특별한 사상 문화 학술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난 서너 세대 동안 예학은 강단의 학문 연구에서 소외되어 왔습니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이었든 간에, 혹 그것이 중세신분사회의 봉건 잔재로 인식되어 낡은 관습을 타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거나, 혹은 민주사회의 새로운 조류에 역행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조심스러운 일이었던지는 모르겠으나, 이 일을 감당하려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무모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달려들어 선현의 훌륭한 저술에 얼기설기 황칠을 해 놓은 저희에게 상이 주어진다고 하니, 기쁜 한편으로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래서 제10회 지훈국학상의 수상자로 한국고전의례연구회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저는 그날 회원들에게 이런 글을 발송하였습니다.

“한국고전의례연구회 제위에게 기쁜 소식을 알립니다. 우리 연구회가 지난해 번역 출간한 《국역 상변통고》가 금년도 지훈국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지훈상 관계자로부터 이 통보를 받고 기쁨을 견디지 못하고 관련문서를 전달드립니다. 지훈상은 20세기 한국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시인이며 국학자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를 창설하신 고 조지훈 선생의 문학과 학문 사상을 기리기 위하여 나남출판사에서 제정한 상으로 2001년부터 매년 문학상과 국학상 두 부문에 각기 1인을 선정하는데, 올해의 국학상에 한국고전의례연구회가 단체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국학상의 심사위원들께서 뜻깊은 상의 수상자로 한국고전의례연구회를 선정해 주신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일 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마냥 외롭지만은 않다는 사실과, 그 기대에 부응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음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애정과 노력에 대한 메아리일 것입니다. 수상식 날짜는 5월 중순 이후로 예정되어 있는데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그날 회원 모두 서울로 가십시다.”

저희 한국고전의례연구회는 2002년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인문사회기초학문연구지원 사업계획을 공표함에 따라 이에 응모하기 위하여 《사의 국역단》을 결성하면서 처음 조직되었습니다. 제가 연구책임자를 자청하고, 그 전부터 한문고전 윤독회를 함께 지속해 온 사람들 가운데 14인을 모아 예학서적을 번역해보자고 덤벼들었던 것이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 번역의 대상으로 맨 먼저 떠올린 것은 조선말기 성재 허전이 편찬한 《사의》 21권 10책 한 질이었습니다. 생각하면 예서를 번역하여야겠다는 저의 생각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20여 년 전 동료교수 한 사람과 더불어 조선조 가례학의 초기 저술인 《상례비요》와 《가례집람》을 번역해보자는 논의를 한 것이 가장 중요한 계기가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그 논의는 여러 사정으로 중도에 그치고 말았으나 저로서는 언젠가 해야 할 일로 치부해두고 있었기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함께 수행한다면 좀더 쉽게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일을 감행하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 연구계획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승인을 받아, 2002년 9월부터 21권 10책의 《사의(士儀)》 번역사업을 수행하여, 2년 만에 초역본을 완성하고 교정 교열을 거쳐 2006년 4월에 《국역 사의》 5책을 출판 간행하였습니다. 《사의》의 초역을 마친 뒤인 2004년 4월 저희는 두 번째 예서번역사업으로 조선조 영남 예학 최대의 성과라고 일컬어지는 《상변통고(常變通攷)》의 번역을 위한 《상변통고》 국역단을 구성하고 그 지원을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요청하였습니다. 이때도 제가 연구책임자를 맡아서, 공동연구원 2인과 전임연구원 2인, 보조연구원 4인 등 8인으로 구성된 《상변통고》 국역단은, 2004년 8월부터 2년 동안 《상변통고》 30권 16책의 번역 작업을 수행하여 2009년 3월에 전10책으로 편집하여 인쇄에 부쳐 간행하였습니다. 저희는 《상변통고》의 초역본이 완성된 뒤 2007년 4월, 제3차 예서번역사업으로 조선후기 노론예학의 집대성이라 일컬어지는 《가례증해(家禮增解)》 국역단을 구성하였습니다. 이 사업 역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7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1년 동안 《가례증해》 14권 10책의 번역을 진행하여, 2009년 2월에 초역본을 완성하여 그 결과를 한국연구재단에 보고하였고, 현재 출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상변통고》를 국역하면서 그 예학사적 의의를 점검하기 위하여 2006년 8월 안동의 국학진흥원에서 ‘동암 유장원의 학술과 사상’이라는 주제로 여덟 분의 학자를 초청하여 학술회의를 개최한 바 있으며, 2008년 11월 경북대학교에서 영남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예학’이란 주제로 10인의 예학자를 초청하여 19세기 후반기의 예학 동향에 대한 학술회의를 주관한 바 있습니다. 저희는 또한 퇴계학부산연구원과 협조하여 예학교실을 개설, 2006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70여차에 걸쳐서 예학에 식견이 높은 지역 원로와 소장 학자들이 모여 예학의 주요 주제를 강연 토론함으로써 예학 담론의 대중적 확산 가능성을 점검한 바 있으며, 2008년 3월부터는 매주 예학교실을 통하여 특정 예서(禮書)를 집중 강독 토론함으로써 고전 예학의 담론을 시민생활 속에 일상화하려는 시도를 진행하여,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저희는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내에 한국예학총서(韓國禮學叢書) 편찬실을 두어 조선조 이후 저술된 한국의 모든 예서를 하나의 총서로 집결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2008년 연말에 한국예학총서 제1차분 60책을 간행한 바 있고, 현재 제2차분 80책의 해제 작업을 거의 끝내고 간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예학총서는 현재까지 모인 자료만으로 보면 모두 300여 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저희 연구회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사의》와 《상변통고》 및 지금 간행을 준비 중인 《가례증해》는 조선왕조시대 가례학의 대표적인 성과였습니다. 예서의 번역을 통하여 조선왕조시대 예학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저희의 이런 노력이, 예절 담론과 예학이란 학문의 현재적 정체를 확립하는 데 얼마만 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예단도 할 수 없습니다. 이들 예서는 대부분 조선이라는 지역과 봉건신분사회라는 특정 조건에서 저술된 것으로 왕조시대 주자학의 종법사상이 깊숙이 반영되어 있기에, 그 내용이 모두 오늘날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자녀와 형제자매와 남녀장유 등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사랑과 믿음의 미덕을 근간으로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정의하고 실천하려는 예학의 기본 정신과 골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문학의 중요한 기축이 된다는 점에는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가 제안한 예서 번역작업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과제로 채택되어 진행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에 동조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공감이 작용한 결과일 것입니다.

지훈 선생이 말씀하셨던 바와 같이 세계문화를 흡수하여 새로운 경지를 창조한 국학으로서 조선조의 예학은 당대 세계의 학문 수준으로는 거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조의 가례학을 집대성한 저술의 하나로서 《상변통고》는 지훈 선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국학상의 수상자로 모자람은 없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번역한 저희들에게 상이 주어진 것은 과분한 일입니다. 최근에 와서 철학, 사학, 문화인류학, 민속학 등 여러 학문분야에서 예학에 대한 연구 논문과 저술 및 연구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그 중에는 탁월한 연구성과가 또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희들에게 이 상이 주어진 것은, 저희들이 저질러놓은 예학서적의 번역이 가져올 예학의 학술담론에 대하여 일단의 책임 있는 행동을 담보하라는 책망과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저는 물론 저희 여러 젊은 회원들이 앞으로 계속 정진하여 번역서와 논문과 저술을 통하여 답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5월
한국고전의례연구회를 대표하여 정경주

 

심사평
금년도 지훈상 국학부문 해당 분야가 한국사상 분야임을 통고받은 선정위원들은 1차 모임에서 먼저 선정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첫째, 이미 시상자를 낸 한국성리학과 한국불교 분야를 제외한다. 둘째, 따라서 이번에 시상할 분야는 한국원시사상, 한국노장사상, 한국예학, 한국양명학, 한국실학 및 개화기 사상 등으로 한다. 셋째, 해당 연도는 2008년부터 2010년 3월까지의 기간에 출간된 저역서로 한다.

선정위원들은 2차 모임에서 한국실학 분야의 《이제마의 철학》과 개화기 사상 분야의 《유교적 사유와 근대 국제정치의 상상력》, 한국예학 분야의 《국역 상변통고》를 1차로 선정하였다. 3차 모임에서 선정위원들은 이 3종의 저서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학술적 평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역 상변통고》를 전원 이의 없이 선정하였다.

《상변통고(常變通攷)》는 고증적 주해로 이름난 유장원(柳長源, 호 東巖, 1724~1796)의 저작으로, 이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바탕으로 하여 가례와 관련된 고례와 학자들의 소주(小註ㆍ큰 주석 아래에 더 자세히 단 주석) 및 송대 성리학자들의 예설까지 채록하여 실었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조선시대 가정(家禮)과 향당(鄕禮), 학교(學校禮) 및 국휼(國恤禮)까지 각 예절의 절차와 절목을 세목화하고 주해함으로써 《주자가례》를 확대 보정한 30권 16책의 거질이다. 첫 간행 시기는 1830년이며, 조선조 18세기까지의 민간 가례 중심의 예를 ‘상례(常禮)’와 ‘변례(變禮)’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데 필수적인 저작이다.

《국역 상변통고》(신지서원, 2009)는 한국고전의례연구회의 정경주, 유탁일, 김철범 등이 책임연구원으로 2004년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국학고전 번역연구 지원을 받아 이룬 업적이다. 이 역서는 영인 원문을 합쳐 각권 500쪽 내외 10책의 방대한 분량이며, 초역과 주석, 교정, 윤문, 교열, 편집 등에 13인의 학자가 동원되어 6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하였다.

오역이 없을 수 없으나 크게 문제되는 내용은 없으며, 원저의 중요성과 방대한 분량의 번역, 상세한 주석과 교열에 쏟은 ‘학구적 노력’을 본 위원들은 높이 샀다. 이 책에 우리말로 표현되어 담긴 구체적인 예절과 예설들은 오늘의 시속에 맞는 이른바 ‘변례의 새로운 제정’이라든가, 시속을 초월한 ‘보편적 상례의 깨우침과 그 실행’을 위한 점에서도 시의에 매우 적합한 저술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2010. 5. 24
제10회 지훈국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윤사순
심사위원 홍원식·김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