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봄날에 ― 조용중 대기자를 기리며
작성일 : 2018-05-16   조회수 : 109

휘청거리는 봄날에 ― 조용중 대기자를 기리며



땅이 풀리기를 기다린다. 계절의 순환은 보챈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내내 계획했던 봄 일에 마음만 급하다. 해토(解土)는 봄비가 한참을 더 내려야 하는데 또 춘설(春雪)이 쌓인다. 봄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은 겨울 냄새가 아직도 남았다. 녹았다가 다시 얼기를 반복해 질척거리는 산길이 반송에게 다가가려는 발목을 잡는다. 눈을 헤치고 고개를 내민 복수초의 노란 꽃이 가녀리다. 꽃의 체온만으로도 눈을 녹일 수 있는 자연의 신비를 지금 보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영춘화(迎春花)가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언뜻 보면 개나리꽃 비슷한데 재스민 종류의 다른 꽃이다. 개나리보다 2, 3주 먼저 핀다. 80년 고목이 된 호수가의 왕버들 가지 끝에 뿌연 초록 띠가 성채(城砦) 같은 아우라를 과시하며 겨울을 밀쳐내고 있다. 겨우내 햇볕을 반사하며 꿋꿋이 버텼던 희디 흰 자작나무 줄기에는 황토색의 물이 오른다. 남녘에 만개했다는 매화 꽃봉오리도 봉긋해졌다. 붉은 물이 터질 듯 가득 차면 고고한 함성을 울리며 꽃이 핀다. 봄의 전령사를 자임하는 산수유와 히어리, 생강나무의 노란 꽃들이 순서 없이 다투어 내는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신생아의 울음처럼 울리며 고요한 산중이 갑자기 왁자지껄해진다. 눈 녹는 계곡 물소리가 더해져서일까.


지난 주말 대학후배 몇이서 시산제(始山祭)를 핑계로 수목원을 찾았다. 짧은 산행이지만 마음은 스무 살 젊음으로 돌아가 겨울 숲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같이 하며 수목원을 걸었다. 새싹이 나기 전이라 나무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아무래도 추상적이기 십상이다. 눈도 호사 누리고 귀도 호강했다는 감사 인사가 도시생활에 주눅 들어 소시민이 되어가는 안타까움으로 들렸다. 이제 연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그들에겐 공허하겠지만 고향 빈 밭에 묘목이라도 심어 생명의 애착을 느껴 보라고 권했다. 


농부의 시간은 1년이 여덟 달밖에 없다. 땅이 얼고 비가 내리는 기간 때문이다. 그들이 가고 남겨진 서너 시간 조바심으로 반송 가지를 다듬었다. 조금이라도 해찰을 부리면 또 1년이 훌쩍 가버린다. 탄력이 붙은 나무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 방식대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가가 궁금해 새로 나온 고등학교 교과서를 넘기다가 찾은 이른 봄날의 정경을 잘 그린 정지용의 시 〈춘설〉을 여기에 옮긴다.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멧부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 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봄날은 생명의 탄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로언론인 조용중(趙庸中) 선생이 돌아가셨다. 향년 88세. 환절기에는 부음(訃音)을 자주 받는다. 노인들의 쇠약해진 면역체계가 봄날을 앞둔 겨울의 마지막 냉기를 녹여내지 못해서이지 싶다. 몇 달 전까지도 휠체어에 의존해 용인에서 상경해 프레스센터나 관훈클럽 언론세미나에 참석하며, 언론현장을 지키려던 의지만으로도 생동하는 봄날을 맞을 것 같았다. 책 욕심을 넘어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교보문고를 드나들며 열심히 찾아낸 외국서적들을 다 읽을 시간은 주어야 했다. 


 

아버지 사진.png

65년 동안 언론인으로 외길을 걸은 조용중 대기자. 

 

 

조용중 선생은 1953년 언론계에 입문하여 만 65년 동안 외길로 언론인으로 살았다. 첫 직장인 자유신문사에서 세계통신을 거쳐 1960년 동아일보 정경부 차장을 맡는다. 1962년 조선일보 정치부장, 편집부국장을, 1965년 서울신문 편집국장을 맡았다. 이후 미국 인디애나대학 유학을 마치고 경향신문 편집국장,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된다. 1974년 문화방송·경향신문 전무이사로 발탁되고 1981년 신군부에 해직되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 유학갔다. 그후 한국언론연구원 원장을 맡는다. 

 

30년 전 서울올림픽 무렵 연합통신 사장 때 처음 뵈었다. 원로 언론인의 기품이 그런 것인지 20년 후배의 언론출판을 격려하면서 사장실에 걸렸던 이만익 화백의 〈아우래비접동〉 판화(200/200)를 흔쾌히 선물했다. 이 화백은 올림픽 미술감독으로 그이의 작품 판화를 기념품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 그림은 서양화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되었고 출판사 좋은 자리에 지금도 따듯한 온정으로 남아 있다. 황망했지만 이런 연분이 먼 핏줄의 울림이었던 것을 남원 향교에서 제를 지내는 시향(時享) 때 알았다. 집안 형님이셨다. 《춘향전》의 작가 설중환 교수가 연구한 할아버지(趙慶男)의 문집 《난중잡록’(亂中雜錄》의 국역판 출판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교정을 보며 우의를 쌓았다. 이 책은 육지에서 겪은 임진왜란의 기록으로 김훈의 《칼의 노래》에도 인용되었다.

 

 

아우래비접동.JPG

이만익 화백의 아우래비 접동 판화. 연합통신 사장 시절 사무실에 걸려 있던 작품을 20년 후배의 언론출판을 격려하며 흔쾌히 선물했다. 


 

간간이 풀어놓는 취재 비화는 그 시절 외로운 민주화 투쟁이자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한국언론사 교과서였다. 항상 경향신문 이광훈 논설고문이 유머 넘치는 추임새를 넣으면 그 비화는 몇 걸음씩 심층으로 깊어만 갔다. 기록으로 남기자며 출판을 부추겼다. 이제 그의 책 《미군정하의 한국정치현장》(1990), 《저널리즘과 권력―그 실상과 허상》(1999), 《대통령의 무혈혁명》(2004)은 정치부 기자의 열정과 땀이 밴 ‘펜은 권력을 이긴다’는 실천의 역사가 되었다. 언론계 오랜 동무였던 김동익 전 중앙일보 사장의 회고처럼 그이는 학력사회의 허망하기 그지없는 두꺼운 유리천장을 실력 하나로 뚫고 기자의 길을 늠름하게 걸은 몇 안 되는 거인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하늘나라에도 봄날은 휘청거리는지요? 선생의 유머에 감싸인 독설이 벌써 그립습니다.



이 글의 일부는 2018년 3월 15일 〈한국일보〉의 '삶과 문화' 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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