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더 크게 채운다
작성일 : 2017-11-27   조회수 : 145

비워야 더 크게 채운다



반송 가지가 내려앉았다. 지난여름 50년이 다 된 아름다운 수형의 반송이 폭우 뒤의 물먹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벅지만 한 맨 아래 큰 줄기가 찢겼다. 내 팔이 우지끈 꺾이듯 가슴이 철렁했다. 폭설로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해 소나무 줄기가 내려앉는 것은 보았지만, 물의 하중으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처음 겪었다. 여러 줄기에서 많은 가지를 쳐 나간 촘촘한 솔잎들이 물을 머금으면서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근간(根幹)이 받치는 힘의 범위를 벗어난 허장성세(虛張聲勢)의 결과일 수 있다. 20년 전 이 아름다운 반송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양조장집과 실랑이를 하며 그때 형편으로는 거액을 들여 어렵게 구했던 반송이었다. 처음 갖는 자랑스런 나의 우주목(宇宙木)이었다. 반송과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분에 넘치는 좋은 나무를 키운다는 아내의 시샘을 외면하며 더한 애정을 쏟았다. 처음 몸살을 앓을 때는 나도 맞아 본 적이 없는 영양주사를 서너 해 동안 주기도 했다. 존재 자체로 상징이 되었다. 광릉숲 옆에 마련한 집 뜰 전체를 아우르는 수호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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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송은 여러 가지의 끝부분에 촘촘하게 난 솔잎들의 집합이 초가집 지붕처럼 푹신한 느낌을 준다. 해가 더할수록 앙증맞은 초록우산의 이 반송이 장자(莊子)의 대붕(大鵬)의 날개 같은 하늘우산을 펼치며 내 곁을 지켜 줄 모습을 그리는 유쾌한 상상을 하는 나날이었다. 죽은 가지를 털어내고 웃자라는 싹을 매년 잘 다듬어 주며 푸르른 성채(城砦) 같은 웅장한 모습만 즐기면 되는 줄 알았다. 귀티 나는 겉모습에 빠져 작은 가지 하나 함부로 자르지 못한 과잉보호였는지 모른다. 자랄수록 안으로 깊어 가는 무게중심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 팔을 스스로 부러뜨리지 않을 수 없는 나무의 성장통을 알아채지 못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한계를 넘어설 때는 근본이 부러질 수도 있는 자연의 섭리가 그것이다. 이상기후로 삼사 년 태풍도 없었는데 시간이 쌓이면 나무에게 이런 일도 일어난다. 몇 년 전 청량리 홍릉에 있는 산림과학원 정원의 1백 년이 넘는 아름다운 반송이 강풍에 가지가 찢겼다가 몸을 추스르는 안쓰러운 모습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단순한 바람 탓이라기보다도 바람길을 막은 빽빽한 반송잎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불현듯 수목원에서 한창 잘 자라는 반송 3천 그루도 이럴지 모른다는 깨달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10년, 20년의 가까운 미래의 시간을 뛰어넘는 또렷한 그림이 스친다.

 

찢긴 줄기를 몸통 가까이에서 베어 냈다. 생명의 울음도 있었을 것이다. 좌우 균형을 맞추려고 잘 자라는 다른 굵은 줄기들도 베어야 했다. 소나무는 가지 하나하나가 또 다른 하나의 소나무 수형(樹形)을 갖는다. 사랑스러운 소나무 몇 그루를 베어 낸 셈이다. 20여 년 눈에 익었던 수형은 간 곳이 없다. 입영 전야에 머리를 깎은 거울에 비친 청년 모습처럼 어설프기도 하다. 이삼 년 부지런히 솔밥이 채워지면 또 다른 수형을 선물할 것이다. 초록우산이 벗겨진 쉰 살 몸통의 근육질이 더욱 강건하게 용틀임하는 모습을 드러낸 것은 또 다른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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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송(盤松)이라는 소나무 종자가 따로 있기보다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키우지 않고 둥그런 부채모양으로 가꾸기 위해 어릴 때부터 줄기와 가지를 다듬는 손길이 많이 가야한다. 뒷동산의 다박솔처럼 줄기가 땅을 덮으며 그냥 자랄 수도 있는데, 사람들의 어떤 욕망의 상징으로 이 수형을 만든다. 학명은 ‘일본적송(赤松)’이다. 일본 정원수에 많이 보이고 그들의 일상이 된 소나무 분재(盆栽)의 소재로 쓰인다. 그러나 굵은 철사로 줄기를 얼기설기 얽어매 성장을 억제하며 작게 키우는 잔인성이 싫다. 이것을 분재의 예술이라고 감상하는 사람들의 심사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특별명승지로 자랑하는 가가와(香川)현의 4백 년 된 리쓰린(栗林)공원에 잘 다듬어진 수백 그루의 반송들을 보면 저들의 취향을 알 듯도 하다. 수년 전 물기가 많은 눈으로부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대나무를 엮어 커다란 삿갓을 씌운 일본의 특별한 겨울나기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공원만이 아니라 가로수까지도 그 정성이 지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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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가와(香川)현의 리쓰린(栗林)공원에 잘 다듬어진 수백 년 된 반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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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쓰린(栗林)공원의 대표적인 반송, 몇백 년의 세월이 이렇게 응축되어 있다. 나에게는 꿈이어야 한다.


 

지난 반 년은 이런 깨달음으로 수목원의 반송 3천 그루의 손질에 눈코 뜰 새 없었다. 4년 만에 잔뿌리까지 잘 내려 성장에 탄력이 붙었는지 스무 살의 녀석들이 지난해부터는 내 키를 넘어 압도하기 시작했다. 자식 키우는 마음과 또 다른 가슴 뿌듯함뿐이었는데 이제는 20년 후의 비바람과 폭설을 견딜 녀석들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깨물어 어느 손가락이 아프지 않을 수 없겠지만 3천 그루는 너무 많았다. 한여름에 시작하여 눈이 내리기 전까지 모두 만져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마음이 앞서고 손질은 버벅댔다. 다른 일정이 계획되었던 인부들까지 이 일에 투입하였다. 그들에게 내가 깨우친 20년 후의 반송 수형을 미리 그려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네 차례 순차적으로 심었던 반송들이 그 사이 이렇게 큰 것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5미터 수간(樹間)을 생각했지만, 맨 처음에 심은 반송은 내가 공간개념이 희박하여 썰렁하다는 생각에서 아무래도 바투 심었던 것 같다. 몇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아마추어가 자초한 고역이다. 꼭 부딛쳐 보아야 아는 것은 아니라도 나의 예측가능한 미래의 수준이 그러했다. 햇볕을 많이 받는 남쪽 사면의 반송들이 더욱 그러했다. 서로 수형을 자랑하다 자리다툼할 것 같은 답답하게 보이는 1백 그루를 골라 다시 캐내 널찍하게 옮겨 심는 일부터 시작했다. 마침 지난가을 허가를 받아 간벌해 둔 공간이 있어 다행이었다. 처음 심을 때보다 두 배 이상 자란 녀석들 때문에 몇 배의 품과 시간이 드는지 몰랐다. 서너 차례의 물 주기와 줄기와 가지를 다듬는 일로 한 달을 보냈다. 올봄 일본 동경의 수목원을 견학하고 마음에 두었던 수목원 사이사이의 길을 확충하는 일도 병행하였다. 그 틈에 일동에서 촌노(村老)가 씨앗을 받아 30년 동안 정성 들여 키운 반송 80그루도 새 식구로 받아들였다. 그랜드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의 수정보완인데도 생명들에 관한 일이어선지 힘만 들었다.

 

우선 지금까지 눈에 익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반송의 수형은 무시하기로 했다. 이 땅에 오래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는 그다음 문제다. 땅에 가까운 굵은 아랫줄기들을 과감히 베어 내 바람길을 열었다. 땅에 뿌리박은 줄기 몇 개만 살리면서 약한 줄기와 곁가지들을 쳐냈다. 삶이 그러하듯 지금은 아름다운 수형을 이루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곁가지의 운명이 눈에 보였다. 처음부터 햇볕 경쟁에서 뒤져 뒤틀린 약한 줄기는 자라더라도 결국 튼실하게 자란 줄기들 틈에 삭정이가 되고 햇볕 길을 막아 나무 전체가 몸살을 앓게 하기 때문이다. 

 

반송밭이 조금은 낯선 풍경이 되었지만, 신선함으로 변신할 두세 해 후의 봄날을 기다리며 참기로 했다. 사람도 실천하기 어려운 ‘비워야 더 채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지를 절단당하면서 많이 아팠을 나무들이 재창조할 그들의 찬란한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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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일부는 2017년 11월 24일 〈한국일보〉의 '삶과 문화' 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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