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노란 색깔로 시작한다
작성일 : 2017-04-21   조회수 : 201

히어리 꽃은 노랗다

그리고 하늘을 캔버스로 춤추는 진달래꽃의 군무(群舞)

 

 

겨울의 자리를 밀쳐낸 수목원의 봄은 노란 색깔로 시작한다. 언제부터 노란색이 희망의 상징으로 사용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3년 전 숱한 젊은 영혼을 삼킨 세월호의 참극을 애도하고 애타게 구원의 염원을 담은 리본도 노란색이었다. 오래된 영화 〈빠삐용〉에서도 주인공이 죽음을 담보로 그리던 귀향을 환영해 주는 환상도 도열한 참나무 가지에 휘날리던 노란 리본의 물결이었다.

 

영춘화(迎春化)가 곡마단 천막 위의 깃발처럼 노란 꽃이 만개하면 우리 주변에 익숙한 개나리의 합창이 뒤따른다. 한걸음 더 들어가 볼 일이다. 생강냄새를 연상하는 짙은 향기로 산 협곡의 겨울 냉기를 몰아내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산수유와 많이 닮았다. 겨울냄새로 황량한 겨울나무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노란 꽃을 피워내야 하는 의지가 생강냄새로 결정되었나 싶어 코끝이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의 착각을 갖게 한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춘천지역의 사투리로 남도의 빨간 동백꽃이 아닌 바로 노란 생강나무 꽃이다. 수목원에 생강나무 10여 그루를 따로 모아 두었다.

 

산수유의 꽃은 노란 보석이 박힌 왕관이다. 한 나무에 수천 개의 왕관이 함께 어우러진다. 이 꽃이 가을이 되면 왕관보다 더 많은 새빨간 열매를 준비한다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다. 표피도 아름답고 단풍도 곱다. 얼마 전 작고하신 김종길 시인의 표현처럼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서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하는 감동이다. 산수유는 지금 심장 속의 박동과 함께 한다. 

 

  

‘히어리’는 그 이름만으로도 신선해서인지 외국종을 연상하지만 순수토종이다. 상사화가 맨 처음 파초 같은 잎을 내밀 무렵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히어리의 노란 꽃은 거꾸로 매달린 보리이삭이나 신부의 노란 귀걸이 같아 더욱 정겹다. 이창복 박사가 순천 송광사 부근에서 이 나무를 발견할 때 전라도 사투리인 ‘시오리’(十五里)를 ‘히어리’로 들었다는 말도 있다. 북한산의 토종 수수꽃다리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킴 라일락’이 되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라일락의 이름을 얻어 이제는 우리가 이를 수입한다. 자생식물을 홀대하여 종자전쟁이라는 제국주의의 희생자를 자처한 꼴이다. 이제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고 히어리의 번식연구를 같이 했다는 강화도 한수조경 한경구 선배의 배려로 15년 전 광릉 집에 히어리를 심었다. 

 

거름을 따로 한 것도 아닌데 양지바른 햇볕만으로도 잘 자라 열세 줄기의 큰키나무가 되어 내 키를 훌쩍 넘는 자랑스러운 나무가 되었다. 꽃 지고 돋아난 투박하면서도 두툼한 여름 한철의 유별난 잎들도 정감이 간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낙과가 되어서도 작은 박격포처럼 몇 초 동안 씨앗을 방출하는 모습을 포착한 호기심 많은 사람의 비디오를 구경했다. 처음 보는 자연의 신비였다. 이런 과정을 거쳤는지 그 동안 생겨난 아들 손자 히어리까지 세 그루를 이번 봄에 수목원으로 옮겼다. 많은 사람들과 귀한 히어리의 봄날을 공유하자는 뜻을 망설이며 받아준 아내가 고마웠다. 열 살 먹은 블루베리와 아로니아 40그루를 잘 키워보라고 선물하여 서운함을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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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집에서 18년을 자란 히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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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수목원에 자리를 잡은 히어리의 노란 꽃


이제는 히어리 번식도 일반화되어 작은 나무는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수목원에서 가까운 감악산에서 히어리 군락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어제 오랜만에 함께한 저녁자리에서 내 글을 본 숲 친구인 김민철 형이 한국 토종인 히어리를 화제로 삼자 광릉수목원장인 이유미 박사가 조심스런 정보를 건넸다. 일본 후쿠오카에서도 DNA검사까지 마친 히어리가 발견되었다는 연구보고서가 있어 특산식물 목록에는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보존희귀종의 자리는 흔들린다고 한다. 제주도 왕벚이 일본에 건너가 사쿠라가 되었듯이 히어리나무들이 대한해협을 언제 어떻게 건넜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니면 학자들의 연구를 더 지켜보아야 한다. 힘든 일을 하는 연구자들의 일은 그들의 몫이다. 내가 사랑하는 히어리의 꽃은 오늘도 노랗다.


노란 색의 봄이 열리면 이제는 하얀 꽃, 연분홍 꽃들의 차례이다. 봄날이 가끔씩 초여름 날씨가 되기도 하는 기상이변의 어수선한 요즈음은 꽃 피는 차례도 꼭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가녀린 여인 몸매의 귀한 미선나무가 소복한 하얀 꽃을 먼저 선보인다. 미선나무는 어떤 이의도 없는 우리 토종이다. 돌 틈에 꽂아 두었던 돌단풍의 하얀 여린 꽃들이 짧은 봄이 안타까운 목련 꽃그늘의 영접을 준비한다. 


그 사이 참꽃인 진달래가 삭막한 이른 봄 산에 활기를 불어 넣으며 잿빛 나무들 사이에 혼자이듯 여럿이듯 연분홍의 존재감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나중에 피어날 화사한 철쭉의 붉은 꽃은 화장을 처음 시작한 소녀의 입술처럼 어색하게 붉기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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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가 필 무렵이면 벌써 히어리는 두툼한 잎을 내민다


수목원의 40년이 넘은 진달래는 4~5미터 높이의 하늘을 캔버스로 하여 꽃춤을 춘다. 고개를 젖혀야 볼 수 있는 하늘에 떠 있는 진달래꽃의 군무(群舞)가 봄이 성숙하고 있음을 알린다. 산책로를 만들다 우연히 깊은 산속의 나무그늘 아래 숨어 있던 진달래 군락지를 발견했다. 햇볕 차지하기 전쟁을 치르며 몸살을 앓던 키 큰 진달래나무 십여 그루를 인수전(仁壽展) 정자 앞 탁 트인 호숫가에 옮겨 심은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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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캔버스로 춤추는 진달래꽃의 군무(群舞)


오래 전 진도의 어느 미술관에서 보았던 거목의 무궁화 꽃들이 한여름의 하늘에 둥둥 떠다니며 뱃길을 수놓는 감동이 아련했기 때문이다. 해서 진달래나무 원형 그대로 하늘을 향해 곧추 뻗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가꾸었기에 이런 작은 행복도 함께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디 자란다는 회양목이나 철쭉도 경계목이나 돌 틈에 박아 인위적인 관상수로 눈 아래 낮게 키우는 좀스러운 버릇을 버리기로 했다. 독립수로 자랄 수 있게 아래 가지를 쳐 주고 가지를 하늘로 뻗으며 지구의 중력을 거스를 수 있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것은 조그만 계기가 발아(發芽)하면 전체의 사고방식을 전환시킬 수 있는 예증이기도 하다. 3년 전 울진 대왕금강송을 찾아갔던 길에 처음으로 25년 전 우연히 들렀던 삼척의 영경묘에 다시 들러 큰절을 올렸다. 나에게 소나무에 대한 천둥 같은 깨달음을 준 황장목 미인송 장송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다시 접견했다. 세상을 다른 눈높이로 보며 치열한 삶을 지치지 않고 견디게 한 인식의 전환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 한구석에서 우연히 내 키를 훨씬 넘는 회양목을 발견한 감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장나무라고 단단하고 더디 자라는 나무가 이렇게 큰 나무가 되기에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뎠는지는 알 수 없다. 회양목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라면 이런 나무가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성목이 된 큰 회양목의 자태가 오랜 동안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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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미터 가까운 회양목 옆에 선 김태헌 이사


지난해부터 수목원의 여러 군데 돌계단을 따라 밀식하여 무릎 높이로 잘라 경계를 표시했던 화살나무나 둥그런 모양으로 가꾸었던 소사나무도 넓게 다시 심어 나무 원형대로 자라게 했다. 야만의 주술이 풀린 나무들의 활기찬 새로운 수형이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자연 생태계 질서는 있는 그대로가 자연스러울 수 있음은 당연하다. 어찌 보면 지구의 주인은 나무들이며 우리들은 잠시 스쳐가는 소풍객들인데, 사람이 별도의 눈높이로 자연을 재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는 설중매는 말로만 들었고 이곳 포천은 매화꽃이 늦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화나무’라 하고, 열매를 탐하는 사람은 ‘매실나무’라고 한다. 아무래도 일찍 매화꽃을 만끽하려면 따듯한 섬진강가의 광양까지 발품을 팔 일이다. 그곳 산수유의 꽃궁궐은 덤이다.

 

흰색과 연분홍이 조화를 이룬 산벚의 화사한 꽃장관이 봄비에 씻겨 새싹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꽃비를 내린다. 이미 구룡이 넘실댄다는 수세(樹勢)의 귀룽나무는 제일 먼저 싹을 내밀어 우람한 초록의 연꽃봉우리를 만들고 하얀 꽃구름을 준비한다. 산사나무의 하얀 꽃은 가을에 아기 태양 같은 빨간 산사열매를 예비하기에 신록예찬의 중심에 서는지도 모른다. 연이어 팥알같이 작다는 하얀 배꽃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나는 팥배나무 꽃과 야광나무 꽃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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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배나무처럼 팥알만큼 작은 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야광(夜光)나무.

자작나무들과 함께 자라는 나남수목원의 야광나무는 뿌리를 천연 바위 위에 걸친 세월의 인고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제 꽃이 진다. 바람 탓만은 아닐 것이다. 꽃이 지는 마음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대통령이 파면되고 숨 가쁘게 새로 뽑아야 하는 대통령은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는 봄밤의 정취를 아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넓은 사람이면 좋겠다. 장미선거나 장미전쟁이라는 헛것에 씌우지 않는 낮은 곳에 임하는 구도자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제 학습효과로 그럴 수도 없을 만큼 우리가 대가를 치르고 계몽되었지만 또 권력 탐욕을 부려 ‘이게 나라냐!’하는 광화문의 비명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일부는 2017년 4월 20일 〈한국일보〉의 '삶과 문화' 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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