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가 보지 않은 길을 간다
작성일 : 2017-03-31   조회수 : 1031

봄날, 가 보지 않은 길을 간다

 

 

봄날은 강물로 온다. 미루적거리며 자리를 내주기 싫다는 듯 꽃샘추위라는 겨울의 앙탈 속에서 잠자던 강물이 버들강아지의 솜털만큼 빠끔히 눈을 뜬다. 진통 속에 태어나는 아이와 함께 쏟아지는 산모(産母)의 양수(羊水)처럼 강물은 탁한 듯한 뿌연 질서로 이미 봄의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버드나무 정맥엔 연둣빛 기운의 피돌기가 완연하다. 자작나무는 하얀 몸통에 낀 겨울의 때를 얇은 박지만큼 벗겨내기 시작했고, 가는 줄기에는 봄의 물이 오르는 흔적을 황토 빛으로 보여준다. 매화꽃 피기 전 통통한 꽃망울의 붉은 심장 같은 탄력성은 하늘을 들었다 놓는다. 한 생명의 탄생으로 부산한 봄날은 그렇게 시작한다. 

 

지난겨울도 따듯했다.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2도라는 보고도 있다. 한강도 한 번 제대로 얼리지 못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눈치 챌 만큼 현재진행형이다. 겨울의 강추위가 없는 다음 여름은 병균이 창궐한다는 걱정은 따듯한 겨울을 보낸 사람들의 사치만은 아닐 것이다.

 

이른 봄 수목원 반송 가지치기를 하면서 녹색의 푸르름에 눈을 적신다. 왜 수목원을 하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물으면 이제 그냥 웃어야 한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환상이나 부러움은 없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 고달프더라도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길에 이른 나이 때문이다. 사람보다 사랑을 더 아는 것 같은 3천 그루의 반송들이 제법 의젓하게 나를 반긴다. 말 못 하는 나무라고 쏟아 붓는 정성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나무는 사람보다 정직하다. 4년 동안 터 잡은 이곳에 17살의 처녀티가 날 만큼 튼실하게 뿌리내려 이제는 내 키를 훌쩍 넘어선다. 금년에는 맨 처음에 심은 100그루쯤은 간격을 넓혀 주어야 공간 다툼을 서로 하지 않을 것 같다. 

 

햇볕을 차지하지 못해 스스로 죽은 가지를 솎아주고, 지난 가을 솔잎의 낙엽인 갈비가 엉킨 곳을 털어내며 바람 길을 열어준다. 솔잎이 뭉쳐 있는 곳엔 햇볕 길을 위해 생가지를 솎아내야 한다. 인간세상에서는 그렇게 어렵다는 반송들의 구조조정이다. 그들은 녹색의 비명을 지르며 희생을 감수한다. 이제는 수형을 다듬기 위해 새순을 고른다. 지난 해 새로 난 네댓 개의 순들 중에서 우뚝한 대장순을 찾아 자른다. 나머지 순들에게 영양분이 고루 갈 것이다. 반송을 인위적으로 둥그런 수형으로 키우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 탓이다. 또 한 해를 이렇게 나무에 매달리며 녹색의 날숨과 들숨 속에 파묻혀 상상의 생태계를 꿈꾸는 것은 오로지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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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이렇게 의연한데 사람들은 못난 대통령이 저지른 국정농단에 대한 자괴감을 광화문 광장의 촛불행진으로 표출하며 지난겨울을 견뎠다. 대통령이 나라를 사유화하는 분탕질에 자존심이 상한 시민들이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믿는 씻김굿의 제의에 동참하기 위해 다시 광장에 나섰다. 넉 달 동안 주말마다 만난 그들의 얼굴이 마냥 평화롭고 곱기도 했다. 국회청문회에서 거짓증언을 일삼던 이른바 권력 주변에 기생하던 그들의 뻔뻔한 민낯에 우리는 분노보다 더 깊은 인간에 대한 연민에 젖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우리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1백 년 넘는 명문여대의 승마특기생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 과정과 대학총장・학장의 영혼 없는 처신에 지성인의 권위가 몰락하는 과정을 씁쓸하게 지켜본다. 그 권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랜 동안 밤을 지새워야 할지 모를 일이다. 오히려 지난 봄여름 내내 대학의 가치를 힘들게 부르짖던 이름 모를 이대생들의 정직한 데모에 이제라도 박수를 보내야 한다. 당신들의 대학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의로운 ‘소리 없는 함성’이 의도하지 못한 결과인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의 파면까지 이르게 했으니 말이다. 항상 처음은 미미하지만 그 결과는 창대할 수 있다. 그리고 젊음은 그렇게 맑고 건강해서 부럽다. 그리고 국정농단을 꿋꿋하게 한 걸음 더 깊게 보도한 언론인 손석희 앵커와 그 기자들의 고독한 몸부림이 더욱 아름답고 고맙다.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의 균형추가 우리 곁에 늠름하게 건재함에 행복하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의 침착한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린다. 자유의 종(鐘)이 난타하여 폭포처럼 넘친다. 헌법질서에 의한 새 시대의 팡파르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 뒤뜰의 6백 년 넘는 백송(白松)이 타는 목마름으로 유별난 봄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안심하는 듯하다. 불편했던 한 시대가 간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 의미가 있다고 전인권이 ‘그대 걱정하지 말아요’를 열창하며 목이 멘다.

 

‘우리 승리하리라’는 함성 속에서 50년 넘게 떠돌던 쿠데타 대통령 아버지와 그 딸의 희한한 유령과 이제야 결별한다. 박정희 군사문화의 악령에 희생되었던 반짝이던 대학생이었던 나는 이제 칠순을 앞둔 은발의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선다. 홀가분하지도 후회스럽지도 않다. 그들의 덫에 걸려 주술의 끈을 끊어내려고 열심히 살았는지도 모른다. 언론출판의 모서리였으면 어떠랴. 40년 가까이 정직한 2천 5백 권의 책과 그만큼의 좋은 사람들이 지성의 열풍지대에서 어깨 걸고 춤추는데. 또 나무처럼 살고 싶은 외로운 나무가 되었으면 어떠랴.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푸른 지구의 한 자락에서 강 같은 평화를 꿈꾸는데.


다시 새롭게 떨쳐나서야 한다. 항상 그러했듯이 가 보지 않은 길을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우리가 가야한다. 한 줌도 안 되는 못난 권력의 껍질들은 부끄러워하게 내버려 두자. 이런 썩은 쓰레기들이 거름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무 심는 마음인가. 우리 손자들은 이런 세상을 경험하지 않도록 어깨 걸고 함께 격려하며, 외로운 대장정의 길에 한 발짝 내딛을 일이다.

 

 

이 글의 일부는 2017년 3월 30일 〈한국일보〉의 '삶과 문화' 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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