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성난 세월의 평형수
작성일 : 2014-07-07   조회수 : 1298

매일신문 | 2014. 7. 7.

 

[계산논단] 성난 세월의 평형수 

 

 

 

세월도 강물도 쉬지 않고 흐른다. 같은 흐름이면서도 보이지 않게 흐르는 것은 세월이고, 맑게 혹은 탁하게 그 흐름이 보이는 것은 강물이다. 세월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시대의 바람과 구름은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거나 신화라는 이름의 거대한 뿌리로 틀어 앉아 대를 이어 전승된다. 그것이 자랑스러운 명예라면 선순환이 될 것이고, 원초적인 콤플렉스라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삶의 한 방편일 것이다. 콤플렉스를 합리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자유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유인을 꿈꾸는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이나 공동체의 콤플렉스의 근본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치유하여 위대한 콤플렉스로 승화시킬 일이다. 강 같은 평화라고 말하지만 강 속의 뒤틀림이나 강 표면에 이는 찻잔 속의 폭풍 같은 요동은 없겠는가. 강물은 구석진 곳, 소외된 곳까지 모두를 채우고서야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 그래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한다.

세월은 태양에 비추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소설가 이병주는 명언을 남겼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세월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운명도 우리들의 의지에 따라서는 태양을 좇을 수 있으리란 희망으로 살기도 한다. 인간의 유일한 존재이유일 수도 있다. 


그 세월이 지금 기우뚱하며 흐른다. 항상 과도기이고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겪는 어지럼증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거미줄로 그네를 타는 것 같은 현기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공동체의 상식에 기반을 둔 예측이 가능한 방향이 전혀 아닌 미증유의 대형참사를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것이다. 캄캄한 해저 밑으로 가라앉는 세월호와 그 속에 갇힌 생명들의 아우성을 환청으로 듣는다. 컬러 텔레비전의 생중계는 우리를 속수무책의 무력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게 한다. 그때 국가는 없었다. 구조대도 없다. 책임자도 없다. 정부관료들의 자기 이익 극대화를 위한 국가의 폭력성에 시달리면서도 공동선을 위해 인내한 대가가 이것인가. 한없는 절망감의 수렁에 헤메게 한다. 


세월도 성난 세월이 지금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아야 한다. 벌써 3달이 다 되어간다. 3백여 명의 피지도 못한 청춘들을 진도 팽목항 앞에 수장시킨 책임 없는 어른들이 벌인 귀족놀음의 허위의식이 그렇게 부끄럽다.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최대 호화여객선인 ‘세월호’가 돈이 되는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平衡水)를 빼내고 운항하다 침몰한 것이다. 탐욕의 종교비즈니스에 취한 졸부도 못 되는 청해진해운 회장이라는 유병언의 체포에 검찰과 경찰이 부족해서 군대까지 동원되는 희극이 세상에 남부끄럽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로 권력을 위임받은 이른바 공무원이라는 지배계층의 무책임과 직무태만과 몰염치는 치가 떨리는 분노의 전형이다.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

이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는 상징으로 국무총리를 모신다고 했다. 국가를 개조한다고 한다. 책임 없이 특권만을 향유하는 전직관료를 마피아 소탕의 차원으로 적폐를 일소한다고 한다. 탈법 위법으로 돈만을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를 척결하고 국민 생명이 최우선인 안전사회를 제도적으로 구축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그 직을 걸고 헤쳐나가야 할 이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덕망 있는 국무총리를 모신다는 것이다.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의 지위가 갑자기 그렇게 근사할 수도 있나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자유지상주의자 호페의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 ― 군주제, 민주주의 및 자연적 질서의 경제와 정치(박효종 역)를 읽다가 그의 동키호테 같은 자유분망함에 동의하기도 한다. 군주제의 왕은 왕권을 보존하고 대대손손 자식들에게 튼튼한 국가를 세습시키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보다 정치를 더 잘할 수밖에 없다는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도 있다. 국민은 그 반사이익만 향유하면 된다는 것이다. 왕은 무한책임을 지고 무한권력을 누린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먼저 자식이라도 전쟁의 최일선에 내보내 죽음으로써 국가를 지키는 살신성인의 리더십을 과시하며 그 왕권을 지킨다. 왕은 군림만 하고 정치는 신하가 하면 된다. 신하는 왕족의 인사풀을 벗어나 전국에서 인재를 구하고 실패한 신하는 그때그때 준엄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왕은 부덕의 소치라고 안타까워하기만 하면 된다. 젠틀맨십이라고 중산층 시민들을 치켜세우고, 왕궁의 화려한 의식의 아우라 속에 적당한 훈장을 가슴에 안겨주면 된다. 


호페는 민주제의 국가를 사유재산 소유자에 대한 징발, 과세 및 규제를 행하는 지속적이며 제도화된 재산권의 침해와 착취에 몰두하는 강제 독점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소유자가 아닌 한시적 임시관리자에 불과하다는 데 민주주의의 아킬레스건이 있다. 해결책은 보험회사에 국민의 안전과 정의의 임무를 맡겨 자유의지에 의한 사회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고 눙치면서, 이제는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한다.

 

지금이 대통령은 왕이고, 국무총리는 신하의 대표인가. 6백 년 전 조선 건국 무렵의 설화들이 21세기에 인기드라마 ‘정도전’으로 우리의 건전한 민주시민의식을 덧칠하는 광기를 부리고 있다.


다시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중도사퇴로 끝났지만,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가 3년 전 교회에서 강연한 동영상에 드러난 일본에 대한 역사인식으로 시끄럽다. 교회 내부에서의 강연이 민낯으로 세속에 흘러나와 민망하기도 하다. 지금은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그린 신정(神政)국가 시절도 아니며 교회가 세속권력과의 긴장관계일 수도 없다. 그중에서 조선조 5백 년이 망한 것은 무능한 군주와 게으른 백성들이라는 진단이나 일제 강점하의 위안부 논란이 하느님이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해 주신 시련이라는 교회장로인 그의 비유가 안타깝다. 용서와 화해의 종교적 잣대에 동의하기에 앞서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하면서 내세운 총독의 목소리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식민지배의 대의로 동아시아의 평화 공영을 양두구육으로 내세웠지 싶다. 지금은 무슨 망언으로 신군국주의의 검은 속내를 감추고 있는가.


일본의 얄팍한 일부 언론이 그의 역사인식에 맞장구를 친다는 보도는 분노보다 더 깊은 절망의 나락을 보게 한다. 2년 전에 집권한 극우정객 아베 총리의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일본 군국주의(軍國主義)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광분하는 요즘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는 군부 파시즘을 지지하는 극우파로서 전쟁 후 A급 전범 용의자로 복역하다 1948년 석방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손자이기도 하다. 백 년이 지나도 인간은 이렇게 간교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70주년의 광복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을, 일본의 군국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벌써 40년도 지난 대학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역사의 울림과 떨림을 같이 했던 류주현의 대하소설 〈조선총독부〉를 다시 꺼내 읽어야 했다. 이 책은 대한제국 시절인 19세기 말부터 1945년 해방까지 50여 년의 격동기 한국의 현대사이다. "아! 광화문이여" 하는 탄식을 넘어 빼앗긴 들에도 봄은 다시 와야 한다는 절규의 서사시일 수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군국주의의 희생양으로 한국인들이 겪은 신산한 삶, 독립투사들의 치열한 투쟁, 조선 총독의 행패, 친일주구들의 탐욕까지 여느 역사책보다도 정확하고 실감 나게 그리면서도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그 조선총독부는 20년 전 광복 50주년을 맞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사라졌다. 모든 일본사람이 조선을 지배한 것은 아니라는 새로운 국제화 선린의 궤변을 쉽게 하지만 모든 조선사람은 일본의 지배를 당했다. 모질게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인들의 트라우마는 대를 이어 면면히 핏속에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함성과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는 결연한 의지가 그것이다. ‘세월호’의 나라가 풍운에 흔들릴 때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우리도 최소한의 역사의식의 평형수(平衡水)를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일이다.


위대한 역사소설은 역사책 그 이상의 그 무엇이다. ‘소설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소설’인 뉴저널리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소설’

나에게 출판은 세상을 보는 창(窓)이다. 동굴의 어둠이 깊을수록 열린 세계에 이르는 빛줄기는 고귀하지만 어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계제(階梯)일 수도 있다.


40대 초반에 시작한 박사 논문(1997년 취득)을 준비하면서 화두는 출판의 언론기능 연구였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언론이 사회비판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출판이 사회과학 출판을 통하여 언론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출판의 언론기능은 바로 이러한 매스미디어의 저널리즘적 기능을 언론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판이 그 역할을 떠맡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국적 뉴저널리즘의 한 사례하고 할 수 있다. 지식사회학으로서의 출판 연구만으로는 밋밋하던 참에 뉴저널리즘과 출판의 언론적 기능을 보완한 것은 스스로도 대견했다. 

 
여기서 뉴저널리즘이란 문학적 기법에 의한 주관적 보도의 저널리즘을 말한다. 자연 사실에 대한 강조보다는 진실의 추구와 이해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스토리텔링식 서술을 사용한다. 사실과 허구가 결합하는 새로운 문학적 저널리즘인 뉴저널리즘에서는 소설처럼 극적인 장면구성, 대화식 스토리 진행, 감정 개입, 현장의 디테일한 묘사, 보도자 목소리, 일인칭의 목격자, 내적인 모놀로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매스미디어는 특정한 쟁점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이나 사고를 전환시키는 ‘저널리즘’의 기능이 있다. 특히 책은 신문이나 방송과는 달리 일상의 정보가 아닌 정치적ㆍ사회적ㆍ이념적 문화적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주도하고 사회인식의 올바른 시각을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 전통적 저널리즘의 최고덕목은 객관적 보도이다. 이는 곧 저널리즘의 대상인 사회현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며, 그에 대한 접근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열려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사실에서 진실로의 전화에는 사실적 보도 이외의 어떤 주관적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지만 제대로 먹혀드는 일련의 사실은 진실이며, 따라서 진실은 ‘성장하는’ 그 무엇인 것이다. 


이에 대해 뉴저널리즘의 시각에서는 객관성이야말로 가장 주관적이고 편견적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현상에 초연함을 불가능하며, 현실은 ‘사실’과 ‘해석’ 또는 ‘외견’과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관찰자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존재하는 사실, 그러한 어떤 사실에 대한 객관적 보도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뉴저널리즘에서는 보도에서의 공평성이나 중립성보다는 우선 보도자 자신이 사건의 목격자이며 참여자요, 행동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적 의견을 뉴스기사에서 진술한다. 


뉴스의 내용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재구성일 뿐이기 때문에 뉴스와 진실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진실추구의 방법으로 뉴스보도 이외의 수단을 강조한 것이 바로 뉴저널리즘인 것이다. 


뉴저널리즘은 1910년대에 존 리드의 러시아 혁명 취재기록인 〈세계를 뒤흔든 10일〉(1919)에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있다. 혁명의 주역인 볼셰비키가 역사의 결정적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사실적으로 기록하여 당시의 혁명적 분위기와 혁명 현장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인가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 혁명의 소식은 이 책을 통하여 전 세계로 전파되어 1990년 소련연방이 해체될 때까지 20세기 제2세계의 흥망이 시작된다. 


1930년대 후반 미국 언론인 에드거 스노는 대장정 끝에 마오쩌뚱이 홍군 근거지로 삼은 연안에 들어가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걸작을 남겼다. 이 책은 저널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어 중국 혁명의 역사 언론서가 되었다. 스노의 부인인 님 웨일스는 남편과 따로 연안 동굴에 들어가 조선인 사회주의 혁명가인 김산, 본명 장지락(張志樂)을 만나 그의 증언을 구술받은 후 1941년 공저로 〈아리랑〉(Song of Arirang)을 출판했다. 이 책은 톨스토이즘과 아나키즘을 거쳐 마르크시즘에 도달한 젊은 조선인 혁명가의 짧고 파란만장한 생애의 증언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평가되는 걸작이다. 


혁명과 전쟁의 와중에서 사실을 기록했으되 높은 문학성을 갖게 된 뉴저널리즘으로는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중국 광둥혁명에 참가하여 중국혁명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그렸다. 그 시대 그 환경의 실제 인물을 예리하게 묘사한 첫 작품은 〈정복자〉(1928)였다. 이어 상하이의 4ㆍ12쿠데타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조건〉(1932)을 썼다. 이 책도 중국혁명의 숨 가쁜 현실에 직접 참가하고 그 속에서 인간조건을 발견해 내는 한 청년의 생생한 체험과 피어린 기록으로 행동문학, 르포르타주 문학의 정형이 되었다. 죽음과 고독, 인간의 고뇌, 운명과의 대결 등을 처절하고 심각하게 그린 그의 대서사시는 모험소설이나 혁명소설을 뛰어넘고 있다. 


미국에서 뉴저널리즘은 반전ㆍ인권 등의 쟁점을 둘러싼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960년대와 70년대에 출판을 통해 등장하였다. 당시의 대표적인 뉴저널리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밤의 군대〉(1968)의 작가 노먼 메일러는 월남전 반전시위(反戰示威)에 직접 참여하면서 전통적인 객관적 보도의 상징인 〈타임〉(Time)의 피상적 보도를 비판했다. “이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타임〉의 저널리즘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내가 쓴 뉴저널리즘의 〈밤의 군대〉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밤의 군대〉 제1부에서 어느 측의 입장도 아닌 얼뜨고 취기가 가시지 않은 3인칭 주인공, 메일러를 내세워 그가 느끼고 본 것을 증언한다. 소설로서의 역사이다. 제2부에서는 그 역사를 다시 허구화한다. 즉, 시위에 관한 증언, 기록, 보고서 등 객관적 자료를 엮어 시위의 전말을 서술하는데, 엮는 과장에서 쓰는 이의 주관이 개입되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 되는 것이다. 증언이나 보고서가 이미 허구요, 그것을 엮은 것도 허구이니 실체는 두 번 굴절되어 전달된다. 메타픽션은 이처럼 언어는 자의적이요, 역사는 쓰는 이의 주관에 걸러짐을 보여주어 우리의 의식이 욕망과 정치성에 물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류주현 실록대하소설 〈조선총독부〉

이 무렵 류주현의 대하소설 〈조선총독부〉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1964년 9월 시사월간지 〈신동아〉 복간호부터 3년간 연재된다. 당시 한일 회담이 진행되는 시대 상황에서 일본의 강점기에 관한 재인식은 시대정신이 되었다. 작가는 집필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란 때로는 형편없이 당돌한 경우가 있다. 알피니스트를 보면 6척 미만의 체구로 태산에 도전한다. 그것은 슬기보다 야심이며 천품의 재능이 아니라 정상을 향한 당돌한 도전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작가가 아니라 알피니스트의 자세였다. 


빈대를 잡기 위해서 절간에 불을 질렀다는 고사가 있다. 1919년 봄, 내 조부의 50칸 집은 원인 모를 화염에 휩싸였다. 나중에 화인이 밝혀졌다. 조부가 반일 항거의 과격파라고 해서 앙심을 품은 어느 일경이 집에다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했다. 나는 그 2~3년 후에 태어났다. 세 살 때 실향 유랑민이 된 어머니의 등에 업혀 서울로 올라왔다. 성장한 나는 작가가 됐다. 도전할 산봉을 찾다가 조선총독부라는 거대한 대상과 부딪쳤다. 


붓을 들고 여러 번 망설였다. 한라산 산록에 서서 그 우람한 산세와 아득한 정상을 보는 것처럼 좌절감으로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나 나는 써야 한다고 스스로를 매질했다. 당돌한 도전이지만 한 작가로서 필생의 작업으로는 조선총독부만큼 우리에게 처절하고 또 경건한 ‘인간의 역사’가 달리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 수법이 조선총독부라는 거대한 주체를 대상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수용함으로써 인물 개체보다는 그 집단과 행적에다 앵글을 잡고 실존 인물들을 실명 그대로 등장시키는 모험을 피하지 않았다. 


작품의 의도는 처음부터 명확하다. 1900년 초, 대한제국 멸망의 전야로부터 시작해서 1945년 일본제국이 멸망하는 순간까지의 우리 시공에 군림했던 조선총독부와 일본인과, 그리고 한국인과 한민족에 관련된 동서양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을 대상으로, 현대의 잔혹하고 슬픈 ‘인간의 역사’를 부릅뜬 눈으로 응시하고 파헤치고 형상화하는 것과 비장한 씨름을 했다.”


건강한 역사의식을 갖고 한ㆍ일 문제의 슬기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조선총독부라는 소설로 배울 일이다. 

 
‘소설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시도는 우리의 경우 사실보도조차도 트집 잡히기 일쑤이던 권위주의 시기에 에둘러서라도 진실에 도달하려 한 여러 문학창작 활동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류주현이 〈조선총독부〉에서 일궈낸 뉴저널리즘의 쾌거는 박경리의 〈토지〉와 황석영의 〈장길산〉에서 더 큰 꽃으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박경리는 25년간의 사투 끝에 완성한 장편소설 〈토지〉에서 서부 경남지역의 한말 농민운동이 어떻게 항일 민족운동으로 확산되어 갔던가를 그려 보였다. “소설은 사실이 아닌 허구적 구상이다. 문학작품이 역사적 사실이나 조건에 구애됨이 없이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측면을 극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만큼 〈토지〉라는 소설을 사실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역사연구물처럼 파악하거나 소설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성에 비추어 평가하는 것은 온당한 방식이 아닐 터”이지만, 이는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유신사회’의 근원적인 모순이 어디에서부터 축적되어 온 것인지를 밝히려는 문학작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황석영은 〈장길산〉에서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현재로 화체시킴으로써 광주민중항쟁과 같은 사태를 더욱 현실감 있게 조명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역사적 전환기 내지 사회변혁기에 민중 및 민중사상이 어떻게 자각되고 형성되는지를 대하구성으로 묘파해 실제로는 70년대 민중운동과 변혁사상의 원류를 독자들에게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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