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야구
작성일 : 2008-09-09   조회수 : 1492

자명고(고대교우회보) | 2008. 9. 9.

 

바둑과 야구

 

 

모든 승부는 자신과의 싸움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수련하는 여러 가지 방책 중에서도 바둑의 길은 마주하는 두 사람이 창조하는 조화의 예술이다. 그 창조적 사색의 절정의 순간을 위해 길을 떠난다.


흐르는 물은 서로 다투지 않는(流水不爭先) 마음으로 바둑의 창을 통해서 사람 사는 이치를 깨닫고자 한다. 시(時)테크에 편승해야 살아남는다는 정보화 사회에서 나를 사람으로 견딜 수 있게 하는 느림의 미학인 안전장치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구름에 달 가듯이 손가락 사이를 스쳐 빠져나가는 유현한 바람의 얼굴을 꿈꾸어 보는 일이라도 말이다. 


지난 8월 22일 일본 와세다 대학과 제2회 바둑교류전을 위해 떠나는 김포공항 대합실에는 북경올림픽의 야구 준결승전인 한일전 중계방송으로 들떠 있었다. 하네다로 떠나는 출국 안내방송의 재촉이 다급해질 무렵 이승엽의 홈런이 작렬했다.


상쾌한 승리를 예감하면서 교우회의 배려로 장학생 대우를 받은 재학생 대표선수 10명과 재학 때부터 공부만큼 바둑을 좋아했던 영원한 멘토 기호회OB 16명의 고대 승리군단은 비행기에 올랐다.


이 대회 준비를 진두지휘한 프로기사 한철균 교우가 한숨을 돌리는 듯하고 영문과 조혜연 프로 8단의 재치 있는 젊음이 상그럽다. 300명 가까이 몰려든 교우들이 성황을 이룬 7월 12일의 제1회 교우회장배 바둑대회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계속되는 대장정의 길인지도 모른다. 

 
공항까지 영접 나온 와세다 OB바둑회의 환영 리셉션은 다정하고 정중했다.


다음날 일본기원을 방문했다. 전통 일본식으로 꾸민 특별 대국실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1971년 회관 준공기념으로 쓴 심오유현(深奧幽玄)의 휘호가 눈길을 끈다.


자료실에 모셔진 산수화 문양이 새겨진 조선 바둑판이 문뜩 잠시 잃어버렸던 왕국의 감회를 새롭게 한다. 이제는 와세다 대학에서의 친선바둑교류전이다. 세계화를 일찍 실천하여 욱일승천하는 모교와는 달리 잠시 머뭇거리다 고생한다는 소문에 시달린다는 숲속의 와세다.


그러나 숲속의 와세다 교정은 방학인데도 젊은 그들의 열기로 꽉 차 보였다. 정문 옆 숲속에 교가를 새긴 오석이 가랑비에 젖고 있다.


대국은 우리 대학의 인촌기념관과 같은 개교 120주년 기념관인 오쿠마회관으로 총장실도 여기 있었고, 동창회 라운지도 넓었다. 우리의 두 배나 되는 애기가들이 장내를 가득 메우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학생들은 한국과 일본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젊음 그 자체의 열정으로 바둑을 통한 우정을 확인하고, 와세다 OB들은 50대의 변호사, 사업가들인 우리보다 10여 년의 연상으로 우리 만남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는 듯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였다. 


한철균, 조혜연 사범의 다면기 지도대국은 그들에게는 큰 선물이었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내년 안암동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바둑교류전 덕택에 올림픽 야구의 금메달을 일본에서 경험하는 오래된 미래를 기억하며 김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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