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지의 폭설
작성일 : 2001-03-01   조회수 : 1378

한미은소식 | 2001. 3.

 

도회지의 폭설

 

 

K 형! 서울에는 30여 년 만의 폭설(暴雪)이 내렸습니다. 위용을 자랑하던 이 거대도시도 대자연이 연출한 오케스트라 앞에 미물처럼 다소곳이 웅크렸습니다. 눈은 한밤에 진주하는 계엄군처럼 몰래 우리 곁에 틈입하지도 않고, 하루종일 사무실 창밖에 그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며 서서히 그러나 줄기차게 우리를 압도했습니다.

꾸밈없는 자연의 늠름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길 퇴근 걱정이나 하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사치인지, 눈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더군요. 탐욕의 도시,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삶이 얼마나 어설픈지도 생각하게 했지요. 터널을 뚫고 다리를 놓고 산허리를 깎아 만든 욕망의 집결지, 이 거대도시를 하늘에서 내려온 눈은 인간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그냥 온통 뒤덮어 잠잠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도심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낸 자연의 경이가 우리를 압도한 하루였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꽉 물린 톱니바퀴의 굴레에 억눌려 지금 내가 어디로 치닫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이 밤, 눈은 강제된 시간의 멍석을 그렇게도 넓고 크게 깔아 놓았답니다. 눈이 녹으면 우리의 익숙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겠지만, 이 폭설은 잠시라도 더러운 찌꺼기들까지 한 자 넘게 깊숙이 덮어버렸으니, 자연을 이기려 했던 못난 욕망의 실체를 오랜만에 와 닿는 태고의 음향 앞에 알몸으로라도 드러나게 했습니다.

K 형!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찾으려고 그렇게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렸는지요. 채워지지 않는 탄탈로스의 갈증 같은 이 욕망의 뿌리는 어디까지 뻗쳐있는지요. 탐욕의 기대치를 너무 높게 설정하여 자신도 모르게 허상에 마취되어 그 노예를 자처하는 것은 아닐까요? 남이야 어찌 되든 어떤 수단을 부려서라도 상대방을 이겨 빼앗아야 하고, 제 분수도 모른 채 사회적 신분 상승만을 일거에 이루어 욕심을 다 채워야만 비로소 실체를 모르는 불안을 잠재우며 안심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들쥐 떼 같다고 폄하하여 분노하기도 했지만, 자기의 낮은 시각을 잣대 삼아 자신보다 나은 옆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헐뜯는 못난 버릇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돌이켜보면 생존의 열망만이 경제적 압축성장으로 치달으면서 사람다운 격을 잊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륙을 향한 강요된 쇄국의 빗장이 풀리는 것 같아 그렇게 기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지난 50년은 대륙의 후예를 갑자기 섬나라에 몰아넣은 꼴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를 자동차나 기차로 가지 못하고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하는 우리가 바로 섬나라가 아닙니까. 섬이 아니되 섬이고, 섬이나 다름없지만 섬은 아닌 이 현실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가치판단의 비겁한 이중잣대를 부과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는 공동체의 대의를 위해 목청을 돋우다가도 내 이익에 부딪히면 권리만 있고 책임은 회피하는 이런 좁쌀영감 같은 근성이 일반화했는지도 모릅니다. 갇힌 섬나라의 신민이었음을 자인하는 살풀이 굿이라도 먼저 해야만 앞으로의 숨구멍이 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K 형! 그렇게 바삐 오가는 와중에도 지나가는 것이 세월인 것만은 확실한가 봅니다. 10년 전, 제가 형에게 ‘불혹’(不惑)이라는 말을 해석해 드린 것 기억나십니까. 불혹을 흔히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운 뜻에 정진한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더 이상 아무도 유혹해 주지 않는 나이’라고 글자 그대로 읽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유혹해 주지 않을 때, 그리고 그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사람은 이제 모든 것을 자기가 책임지고 홀로 서야 한다는 명제를 강요당하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이 늠름하게 설 때만이 비로소 남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사회를 하나의 인격으로 치고 말한다면 아직은 늠름하고 의연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자신이 어떤 의미의 사회적 존재로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자각, 그리고 잘하는 이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 이런 모든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힘겹기만 하지요. 그보다는 어쩌면 의식의 하향평준화로 치달아야만 긴장을 감춘 채 골목대장의 불안한 평화를 누리려고 하는 걸까요?

K 형! 에베레스트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을 수 있는 것은 그 산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받쳐 주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의 문화의 격을 이처럼 함께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 아직은 미진하다는 것을, 이번에 조지훈 선생을 기리는 지훈상(芝薰賞)을 제정하면서 자주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우리 젊은 날의 커다란 신화였던 지훈 선생의 추상같은 지조론이 새천년의 지금에는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어야 할지를 늘 화두처럼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글이 이어졌지만 이 얘기는 전해야겠습니다. 이번 폭설 속에 퇴근길 교통사정이 어려울 것을 감안하여 서울지하철이 무료로 운행했지요. 고루하다는 공무원들의 시민을 위한 열린 사고가 이렇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난달 대설 때는 제집 앞 눈도 치우지 않고, 안전운항을 고려한 항공사들이 비행기를 띄우지 않았다 하여 제 욕심에 항공사 직원들을 멱살잡이한 못난 사람들이 우리를 부끄럽게 했지요. 그러나 이제 하자고 들면 할 수 있는 우리 이웃들의 건강한 자존심의 불씨가 내연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니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내일 새벽에는 산행을 가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밟으며 김구 선생이 답답하고 어려울 때마다 붓글씨로 옮기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서산대사의 시구를 되뇌어 보아야겠습니다.


눈 덮인 광야를 지날 때는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마침내 뒷사람들의 길이 되리니.


넓은 자유에 맞부딪치는 늠름한 사람이 그렇게 보고 싶은 밤입니다.

이전글 지성의 보석상자
다음글 새천년 이렇게 맞자
이름 비밀번호
* 왼쪽의 자동등록방지 코드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