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고집같은 제 얼굴을…
작성일 : 1995-02-09   조회수 : 2223

광주일보 | 1995. 2. 9.

 

대나무 고집같은 제 얼굴을…

 

 

고향 가는 길은 항상 정직한 길이며 지혜의 길이다. 그것은 겨울바람을 태고의 음향으로 반추해 들으며 눈 비탈에 미끄러지며 자식을 앞세우고 고개 너머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는 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 자란 자신의 원형이며 장차로는 아버지 곁에 내가 묻힐 그곳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면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하는 마음의 몸부림들도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는 경건하게 된다. 나에게는 항상 큰 바위 얼굴이었던 아버지의 늠름하신 모습은 이 산속에 올해도 여전하실 것이다. 

 

설날은 엄동설한의 한가운데이다. 또 한 해를 모색해야 하는 설날에는 삭풍(朔風)의 겨울 냄새가 제격이다. 겨울이 주는 계절의 감각은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의 삶을 구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산소 가는 길은 보리밭을 밟으며 대나무 숲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한겨울을 온 가슴으로 푸르게 안고 있는 보리밭은 내가 다시 고향 땅에 우뚝 서 있음을 신선한 충격으로 일깨워 준다.

농사지을 사람이 많이 떠났다지만 그래도 이 보리로 나락 나올 때까지 한여름을 이겨냈던, 그래서 그만큼의 끈질김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람들의 정성으로 듬성듬성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그랬던 것처럼, 비록 도회지에서 자랐으나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커버린 자식의 넓은 등판에 미더움을 가지면서 눈밭 속의 보리밭을 한참 동안 밟아 주었다. 항상 손님처럼 고향을 찾는 것 같은 미안함을 이 눈밭 속에 붕 떠 있는 보리의 뿌리를 열심히 대지에 착근(着根)시키는 것으로 대신하였는지도 모른다.

고향에도 서울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휑한 부끄러운 안타까움이 보리밭에 배어났다. 보리는 백서를 뒤집어쓴 채 그 푸르름으로 한겨울을 견뎌내고 봄을 맞는다. 봄이면 으레 지지배배 하는 종달새가 꽃 피는 봄을 온통 제 것인 양 짓까부러도 보리는 저 혼자 그 겨울을 파랗게 지켰기 때문에 너희들이 봄을 맞을 수 있었다고 자랑하거나 교만을 부리지 않는다.

어느 날 꽃샘추위라도 한 번 오면 지난 긴 겨울 어디서 웅크리며 추위를 피했을지 모를 사람은 봄을 손에 쥐여 주어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더욱 몸을 사리거나, 한편으로는 갑자기 떨쳐 일어나 봄이 멀지 않았으니 조금만 견뎌내자고 선각자 행세를 한다. 그러나 이미 봄을 예비하고 있는 보리는 내 고향 사람들처럼 안으로 영글어 가는 의지를 불태우며 그냥 미소만 띄울 뿐이다. 1백 년 전 이 들판을 뒤흔들었던 동학농민 혁명군들의 들불이 아직도 내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산이 있는 동네는 우리 고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3~4년 전 남해안을 휩쓴 솔잎혹파리로 소나무들이 많이 죽어서인지 대나무숲의 푸르름이 더욱 돋보인다. 

 

거의 60년 주기로,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대나무를 굽혀 보려는 지배권력의 폭풍우가 이 고을을 몰아쳤다. 조선조 후반, 탐관오리의 학정에 시달리기는 전국 어디나 매일반인데 여기서만 동학농민군의 미완의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일 터이다. 일제식민지 지배 시 자유의 혼을 부르짖던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폭풍우도 그렇고, 그리고 불과 17년 전 온 나라가 민주화의 봄을 구가할 때도 광주에만 유독 피바람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우리 고향 사람들은 대나무의 고집을 타고난 것 같다. 젊은 날 사숙(私塾)했던 길돌 선배의 말처럼 대나무는 굽힐 줄 모르기에 꺾이게 마련으로 태어난 것이다. 바위마저 비바람에 날리고 닦여 본래의 모습을 잃고 비바람이 원하는 모습을 닮아 가는데 유독 대나무만이 홀로 청청하다. 폭풍우 걷힌 뒤의 찬란한 태양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봄 다시 푸른 대나무밭을 만들어 나갈 죽순의 건강한 숨소리를 예감한다. 간혹 너무나 억센 폭풍우의 강요에 견디다 못해 꺾일지라도 뿌리의 강인한 생명력은 대지를 보듬고 살아남는 것이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하고 평소에 놀림을 받기도 하고, 속이 비었다고 빈정거림을 받기도 하지만 대나무는 오히려 자기의 본성에만 충실하다. 대나무는 대나무로 태어난 운명까지 기뻐하고 대나무로 살다가 대나무로 죽어가길 바란다. 대나무는 소나무를 부러워하지도 않고 갈대를 깔보지도 않는다.


금년에 보리가 필 무렵이면 30여 년만에 직접 우리 손으로 뽑는 지방행정부 선거의 열기로 뜨거운 여름이 앞당겨질 것이다. 가장 고향을 사랑하는 지도자가 가장 세계적인 인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는 선거 때나 되어야 한 번 '유권자 여러분'으로 들러리에 서는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 고향은 이미 1백 년 전에 동학농민혁명의 집강소(執綱所)를 통해서 지방자치를 실천한 지역이다. 우리가 만들어 나갈 우리 고향의 행정부와 의회는 보리밭과 같은 넓고 뜨거운 가슴과 대쪽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새 지방정부는 또 하나 닮은꼴의 작은 서울 만들기라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이것은 역사의 가르침을 망각하고 역사의 신을 배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폭풍우 속에서 가슴앓이하던 마음의 상투를 풀고 우리의 맨얼굴을 자신 있게 내세워야 한다.

아버지를 뒤로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모퉁이에서 꿩이 눈 속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디를 향하는 힘찬 비상인지 속세의 상념들로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 궤적을 뒤따르다가 파랗게 얼어붙은 겨울 하늘에 눈이 시었다.

조상호 | 고향사랑 운동본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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