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100일의 배롱나무 꽃구름
작성일 : 2017-07-14   조회수 : 1358

한여름 100일의 배롱나무 꽃구름

 

 

나무 심는 마음에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에 배롱나무와 대나무를 가까이에 심어보고 싶었다. 모두 남녘에서 자라는 나무이니 유년의 어떤 기억들을 이곳 경기 북부에서 실체화하고 싶은 욕심이었을 것이다. 따듯한 겨울바람까지 옮겨올 수는 없는 일인대도 말이다. 

 

남도의 흔한 풍경이지만, 고향집 뒤는 조그만 대밭이다. 한겨울 밤 북풍에 푸른 댓잎이 부딪쳐내는 소리의 오묘한 운율 속에서 꿈꾸며 자랐다. 원시적인 태고의 음향이었거나 더 큰 세상의 문을 두드리는 비밀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무렵 무뚝뚝한 아버지가 가는 대나무인 시누대로 방패연을 만들어 주었다. 동무들과 함께 한겨울 언덕에 올라 연을 날린다. 서로 높이 올리려고 얼레를 풀어 연줄을 당기며 추위도 잊는다. 산 너머 어딘가로 꿈을 날린다. 바람을 품은 연이 올라가는 높이의 하늘이 내가 처음 만져본 하늘이었다. 이제 내가 도시의 아이인 손자에게 연을 만들어 주며 그때 내 모습을 애써 그려보지만 아버지의 그리움만 샘솟아나는 세월의 안타까움뿐이었다.  

출판사를 시작하고 한두 해 지나 종로1가 1번지에 문을 연 교보문고의 1층 넓고 높은 로비 에 왕대나무밭이 생겼다. 화려한 교보빌딩에 이런 과감한 녹색공간을 만든 신용호 설립자의 마음속 어딘가에도 고향의 대밭처럼 해마다 희망의 죽순이 솟아났을 것이다. 자신만이 아는 마음의 평화를 만든 신의 한 수가 부러웠다. 시간이 되면 찾는 교보문고는 직업으로의 책보기는 둘째가 되고 이 대나무 찾는 일이 우선이 되었다. 

 

이런 공간을 욕망하기 시작한지 20년 만에 파주 사옥을 지으면서 건물 안에 마련한 반(半)유리온실 속에 하늘로 치솟는 자그만 대밭을 만들어 가슴에 품었다. 또 20년이 지나면 수목원에 왕대나무가 자랄 커다란 유리온실을 지을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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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의 바람소리를 꿈꾸며 파주 출판사 4층에 마련한 공간


 

한여름의 꽃그늘은 귀하다. 여름이 깊어가고 녹색이 사나워지는 뜨거운 여름이다. 그 100일 동안 피고지고를 계속하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들이 화사한 충격을 준다. 나무는 우리들이 견디기 힘들어 지칠 수밖에 없는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부쩍 자란다. 나무처럼 늙고 싶으면  나무처럼 살아야 한다. 여름을 나무처럼 견뎌야 하는데 이때 배롱나무의 꽃그늘은 하늘이 준 선물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요즘에는 남쪽에서 자라는 배롱나무가 서울 시내 길가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한다. 며칠 전 일본을 다녀오면서 벌써 15년 된 영종도 인천공항에서 본 건강하게 잘 자라는 배롱나무들이 반가웠다. 하기는 이곳 파주 출판도시에도 여러 그루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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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주차장 주변의 배롱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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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출판도시에서 잘 자라는 배롱나무

 

 

30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역 앞 광장에서 감동스럽게 보았던 미국 조너던의 작품 ‘망치질하는 사람’이 키 22미터, 무게 50톤의 거대 공공설치물로 광화문 신문로의 흥국생명빌딩 앞에 모습을 보인 것은 2002년 월드컵이 있던 해였다. 노동의 신성함을 생각한 작가의 의도를 살려 확 트인 광장이었으면 그 의미가 더 컸겠지만 우리의 망치질하는 사람들의 현주소처럼 좁은 공간에 갇힐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다. 바로 이웃한 정동 상림원에 살면서 집에 가는 길은 나만의 행복한 지름길이었다. 이 빌딩 로비에 있는 거작 벽화 강익주의 ‘아름다운 강산’을 일별하고 뒤로 나가면 거목의 와불 소나무와 수령이 오래된 아름다운 배롱나무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지나칠 때마다 고향길 가로수로도 심은 나무들이 반갑기도 하고 이 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혜안을 가진 건축주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임진왜란 때 호남의 최초이자 최대의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 의병장 집안 고택의 연못가를 두른 오래된 배롱나무들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소년이 소풍 길에서 처음 마주친 무릉도원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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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의 배롱나무


 

안동 병산서원의 4백년 가까이 잘 자란 배롱나무들의 미끈한 기품은 어떠한가. 한 없이 그 품에 안기고 싶었던 담양 명옥헌 원림(園林)의 3백년 넘는 배롱나무 군락의 꽃대궐은 이제 국가명승의 화관을 썼다. 수목원에 그 남도의 배롱나무를 품고 싶었지만, 경기 북부의 추위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접어야 했다. 그 안타까움을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붉은 꽃을 피우는 흔하디 흔해 그냥 지나쳤던 싸리나무에서 찾았다. 배롱나무 꽃의 환영(幻影)을 보듯 피어오른 꽃무리인 싸리꽃으로 대신해야 했다. 그러나 작고 몽롱한 듯한 싸리꽃으로는 한여름 땡볕과 정면승부하며 더욱 화사해지는 배롱나무꽃에 대한 그리움을 가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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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명옥헌 원림(園林)의 배롱나무 군락


 

지난 가을 양평에서 5년을 키웠다는 배롱나무 55그루를 어렵게 구해 수목원 작은 호수가에 심었다. 비슷한 추위에서 묘목부터 자랐다니 이곳에서도 충분히 견딜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겨울나기를 위해 몸통과 줄기를 베로 감고 2미터 남짓의 나무 전체를 비닐로 덮어 감쌌다. 겨울내내 어울리지 않게 비닐막을 뒤집어 쓰고 보초를 서면서 찬바람을 이겨냈다. 초조하게 봄날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에 애간장이 탔다. 조그만 꿈의 실현이라도 기다림을 견딜 인내심을 준비하지 않고는 함부로 시도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생명에 관한 일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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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수목원에서 자라는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새 순도 대추나무처럼 늦는 모양인지 봄날이 다가고서야 그 모습을 보였다. 반갑고 기뻤다. 이제 참새혓바닥(雀舌) 같은 여린 잎에서 벌써 화사한 붉은 꽃을 상상해 본다. 몇 그루는 마지막까지 눈을 뜨지 못했고, 힘이 부친 녀석들을 물을 빨아들이지 못한 몸통대신에 뿌리 부근에서 새 줄기를 다시 냈다.  또 한두 해 비닐막 속에서 겨울을 더 지새운다면 그 다음 해에는 호숫가 배롱나무 꽃궁궐에 파묻힌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꿈이라도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고 했다.

 

 

이 글의 일부는 2017년 7월 13일 〈한국일보〉의 '삶과 문화' 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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